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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075
한자 倉洞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세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에서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0년 -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에서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월계동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77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이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과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으로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2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3동으로 분동
변천 시기/일시 1988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9년 - 서울특별시 노원구 창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9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4동이 분리·신설
변천 시기/일시 1991년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1동에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 5동이 분리·신설
성격 법정동
면적 3.84㎢[2019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50,645세대[2020년 1월 기준]
인구[남,여] 124,454명(남 60,450명, 여 64,004명)[2020년 1월 기준]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창 1동, 창 2동, 창 3동, 창 4동, 창 5동을 관할하고 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 이 지역에 양곡 창고가 있어서 창동(倉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동 초등학교 옆 공터에 옛날부터 ‘창동리’라고 음각된 석조 이정표가 방치되어 있었는데, 풍화 작용이 심해 알아볼 수 없는 것을 서울 육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창 5동 동사무소 옆으로 복원·이전하였다.

[형성 및 변천]

창동은 조선 시대에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창동리였다.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노원면해등촌면이 합쳐져 노해면이 설치되면서 해등촌면의 창동리·유만리·마산리·도당리 및 노원면의 녹천리 각 일부를 합쳐 노해면 창동리로 만들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조례 제276호에 따라 성북구 노해 출장소가 신설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쌍문리, 월계리가 창동으로 명칭을 바꾸어 통합되었다. 1970년 인구가 증가하면서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에 따라 창동에서 쌍문동이 분리되었고,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 창동으로 나누어졌다. 1975년에는 도봉구 창동에서 월계동이 분동되었다.

창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1977년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5호에 의해 도봉구 창동창 1동창 2동으로 분리되었다. 1980년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413호로 창 2동에서 창 3동이 분동되었다. 1988년 대통령령 제12367호로 노원구에 편입되어 노원구 창 1동이 되었다가 1989년 대통령령 제12557호에 의해 구간 경계가 조정되어 도봉구로 재편입되었다. 이때 창 1동 일부 지역이 창 4동으로 분동되고, 1991년 다시 창 1동 일부 지역이 창 5동으로 분동되었다.

[자연 환경]

도봉구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노원구 상계동, 서쪽으로 쌍문동, 남쪽으로 강북구 번동, 북쪽은 방학동과 경계해 있다. 창동 일대는 일찍부터 사람이 모여 살기에 쾌적한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어,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초안산을 맞대고 있기에 6·25 전쟁 때엔 창동 저지선으로 설정되어 북한군과 대치하기도 하였으며, 1914년에는 경원선이 설치되면서 창동역을 세워 지금까지도 도봉구 지역의 교통 중심지가 되고 있다. 1995년에는 도봉구가 강북구와 분리되면서 도봉구청창동역 부근으로 옮겨져 도봉구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창동 산192번지 일대에 약 0.17㎢[5만 평] 정도의 낮은 야산인 초안산이 있는데, 조선 시대 내시들의 무덤군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19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84㎢로 도봉구 면적의 21.0%에 달한다.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총 12만 4454명[남자 6만 450명, 여자 6만 4004명]에 5만 645세대가 거주하고 있다.창 1동도봉로와 접해 있으며 지하철 4호선 쌍문역창동역에 걸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창 2동우이천이 흐르고 도봉로와 창동 순환 도로가 지나는 준공업 지역으로 공장 100여 개가 밀집되어 있다. 창 3동은 북동쪽의 많은 부분이 주안산 기슭에 있다. 창 4동은 중랑선, 경원선 철도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1989년 택지 개발 사업으로 대부분이 아파트로 조성되어 있다. 창 5동도봉구청서울특별시 북부 교육청, 도봉 등기소 등의 관공서와 대형 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창동 뒤의 초안산은 1999년 골프 연습장으로 사업 시행 인가가 났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서울시와 도봉구에서 시비 150억 원을 투자하여 2012년 ‘초안산 근린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현재 초안산은 각종 체육 시설 및 근린공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남쪽에는 약수터가 있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창동역 사하부의 어둡고 무질서한 환경으로 인해 주민들의 개선 요구가 잇따르자 도봉구에서 2012년 서울특별시 도시 경관 가꾸기 사업 공모에 참여해 경관을 살리는 작업에 착수, 완료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13 내용 현행화 2019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84㎢로 도봉구 면적의 21.0%에 달한다. 2019년 1월 기준 인구는 총 12만 4454명[남자 6만 450명, 여자 6만 4004명]에 5만 645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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