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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 광산김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39
한자 -光山金氏世居地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민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안골에서 광산김씨가 대대로 거주하는 지역.

[개설]

광산은 전라남도 북서부 지역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였으며, 신라 경덕왕 때 무주로 고쳤다.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한다. 도봉구 안골광산김씨들은 수사공파(水使公派)로, 18세기 안골에 조상의 묘를 쓴 이래 19세기에 호수가 크게 늘어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명칭 유래]

도봉 서원 아래 도봉산 자락에 조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안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형성 및 변천]

광산김씨 30세 김진위(金振煒)[1681~1731]의 묘 위치가 옛 주내 지역인 현 경기도 양주시 마전에서 발견된 비석에 근거하여 확인됨에 따라 광산김씨의 입향 시기도 18세기 초반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주로 무과 벼슬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족보상 처음 안골에 묘를 쓴 기록이 있는 조상은 29세 김시명(金時鳴)으로, 김시명의 묘는 양주목 노해면 월계동으로 되어 있다. 이 묘는 1965년 5월에 화장(火葬)하였다. 안골광산김씨 직계 조상으로는 35세 김재의(金在義)[1838~?]가 가장 빠른데 묘의 위치는 양주군 노해면 도봉리로 되어 있다. 이 묘를 포함하여 1967년 4월 15일에 다른 묘들과 함께 화장하였다.

광산김씨는 19세기에 들어와 37세에서 39세 사이에 호수가 크게 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37세 김영집(金永集)[1893~1952]은 4형제를 두었고, 그의 둘째 아들 김관수(金寬洙)는 5형제를 두었다.

[자연 환경]

안골과 통해 있는 상다락원은 대로변이며, 또 풍수상의 이유로 숲을 조성하여 외부와 차단하였다. 또한 집 뒤로 묘를 쓰면서 풍수 형국을 갖추기 위해 조산(造山)하였다.

[현황]

도봉산 자락의 여러 마을 가운데 현재까지 대를 이어 온 성씨들은 주로 서원 마을 아래쪽 서원 내, 곧 안골에 거주하고 있다. 안골에 거주하는 광산김씨들은 매년 10월 충청남도 논산으로 가서 시제에 참석한다. 후손 김용한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몇 세대가 거주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갈수록 거주 세대가 줄고 각지로 흩어져 현재 안골에 남아 있는 광산김씨는 거의 없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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