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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73
한자 李塘
이칭/별칭 영해군(寧海君),이장(李璋),옹지(顒之),안도(安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종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6년연표보기 - 이당 생
활동 시기/일시 1442년 - 이당 영해군으로 책봉
몰년 시기/일시 1478년연표보기 - 이당 졸
묘소|단소 영해군 이당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지도보기
묘소|단소 영해군 이당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2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소덕사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
성격 왕족
성별
본관 전주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왕족.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옹지(顒之). 본래 이름은 이장(李璋)이나 이당(李瑭)으로 바꾸었다. 세종의 아홉째 아들로 신빈 김씨(愼嬪金氏)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임천 군부인(林川郡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여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길안 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 등 2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당은 1442년(세종 24) 영해군(寧海君)으로 봉해지고 소덕대부(昭德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성격이 너그러웠으며 덕의와 절의가 있어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학문에도 드러나서 공부할 때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또한 진기한 놀이와 춤·여색 등을 삼가는 등, 후손들에게 관인대도(寬仁大道)와 검소질박(儉素質朴)의 표본이 되었다. 평소 중풍기가 있었는데 1478년(성종 9) 4월에 더욱 심해져서 그 해 5월 5일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도봉산 남쪽 무수골 기슭[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번지, 도봉동 산82번지]에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이 위치해 있다. 묘역은 다시 서편과 동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동편 묘역 최상단에 영해군 이당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묘는 단독 단분장으로, 묘표·상석·문인석·장명등 등의 석물을 갖추고 있다. 묘표는 1면비로 전체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해군 시 안도공 당지묘(寧海君諡安悼公瑭之墓)’라 새겨져 있다.

영해군의 묘 아래로는 영해군의 장인 신윤동(申允童), 부인 평산 신씨의 묘 등이 위치해 있다. 그 외에 이 묘역에는 충노(忠奴) 금동(金同)[혹은 금음동(今音同)]의 묘가 조성되어 묘비까지 갖추고 있다. 금동세종의 증손자인 강녕군(江寧君) 이기(李祺)의 종이다. 연산군 대에 나주 기생 출신의 나인 김숙화(金淑華)가 이기의 집을 빼앗으려 무고하였을 때, 주인과의 의리를 지켜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상훈과 추모]

이당이 세상을 떠나자 성종은 부음을 듣고 매우 슬퍼하여 3일간 조정의 일을 거두었으며, 전례에 따라 부의(賻儀)·조제(弔祭)·예장(禮葬)을 내려주었다. 시호를 안도(安悼)라 했는데, 화합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이 ‘안’이요 중년에 일찍 죽는 것이 ‘도’이기 때문이다. 1872년(고종 9)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추증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에 소덕사(昭德祠)를 세워 위패를 모셨다. 사당을 소덕사라 한 이유는 그 품계가 소덕대부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는 영해군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매년 5월 5일 기신제를 봉행하며 음력 10월 12일 산소에 모여 시절 향사(時節享祀)를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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