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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45
한자 趙璥
이칭/별칭 경서(景瑞),하서(荷棲),충정(忠定),조준(趙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27년연표보기 - 조경 생
활동 시기/일시 1763년 - 조경 증광 문과 을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789년연표보기 - 조경 졸
수학지 조경 수학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양(豊壤)
대표 관직 판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초명은 조준(趙㻐)이었으나 후에 조경(趙璥)으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중운(趙仲耘)이고,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다. 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조상기(趙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형은 조경(趙瓊)이다.

[활동 사항]

조경[1727~1789]은 영조 대부터 정조 대에 걸쳐 살았던 문신으로,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였다. 1763년(영조 39)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권신 홍인한(洪麟漢)과의 갈등으로 유배에 처해졌다가 곧 방면되었다. 이후에도 강직한 간언을 올렸던 모습이 여러 차례 보인다. 조경은 조정에서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가 거친 주요 관직에는 예문관 검열·부제학·대사성·공조참판·좌승지·승문원 제조·실록청 당상관·대사헌·함경도 관찰사·지돈령부사·형조판서·지경연사·홍문관 제학·도총관·우의정·동지경연사·판중추부사 등 중외의 요직이 망라되어 있다.

관료로서 조경은 1771년(영조 47) 3월 24일 어사로 파견되어 기전(畿甸)의 부당한 세금 부과에 대해 조사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2월 9일 광주부(廣州府)의 민폐 3조를 건의하기도 하였다. 특히 함경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는 민폐를 개혁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1787년(정조 11) 1월 3일 역모에 연루된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에 대한 처벌을 강경하게 주장하며, 그 아들 이담(李湛)의 본명이 준(濬)인데 자신의 이름도 준(㻐)이라 음이 같다는 이유로 국왕에게 개명을 요청하여 ‘경(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해 2월 25일 은언군 처벌 주장 건으로 삭탈관직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3월 13일 다시 판중추부사로 서용되었다.

[학문과 저술]

영조 대에 『문헌비고(文獻備考)』 편집에 낭청(郞廳)으로 참여하는 등 각종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문헌비고』 편찬 사업에서 조경은 「학교고(學校考)」 8편을 지었다. 또한 『국조보감(國朝寶鑑)』 편찬에도 참여하여 정종·단종·예종·인종·경종 부분을 편찬하였다. 문집으로 『하서집(荷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정조가 그의 종상(終祥)을 하루 앞두고 사자를 보내 치제(致祭)하며 각별한 뜻을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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