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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92
한자 金碩臣
이칭/별칭 군익,초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8년연표보기 - 김석신 생
성격 화가
본관 개성
대표 경력 도화서 사과

[정의]

『도봉첩』에 실린 「도봉도」를 그린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

[개설]

김석신(金碩臣)[1758~?]의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군익(君翼), 호는 초원(蕉園). 아버지는 도화서 화원인 김응리(金應履)이며, 큰아버지 김응환(金應煥)[1742~1789]에게 입양되었다. 형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이다. 김석신은 진경 산수화가(眞景山水畵家)인 정선(鄭敾)의 영향을 받아 서울 근교의 실경을 주로 그렸다. 특히 인수봉(仁壽峰)을 중심으로 한 도봉산 전경을 그린 「도봉도(道峰圖)」가 그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활동 사항]

김석신은 도화서 화원으로 사과(司果)의 벼슬을 지냈다. 양아버지인 김응환은 18세기 후반 도화서 화가로 활동하면서 화원(畵員) 사회의 경향을 주도하고, 화원 가문을 형성하였다. 김석신김응환 회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한 화가이다. 김석신의 정확한 사망 연도가 밝혀져 있지 않으며, 김득신의 동생이었음만 확인할 수 있다. 그 회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현존 작품의 수가 적은 편이며, 의궤에 참여한 기록도 단 한 차례로 개성 김씨의 화원들 중에서 가장 적다. 이를 통해 젊은 나이에 절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저술 및 작품]

현재 김석신의 작품은 서울 근교의 실경을 그린 실경 산수화 5점과 남종 산수화풍의 산수화 2점이 남아 있다. 「도봉도」, 「담담장락도(潭潭長樂圖)」, 「압구청상도(狎鷗淸常圖)」, 「금호완춘(琴湖翫春)」, 「가고건류(加敲巾流)」는 모두 서울 근교의 실경을 그린 것이다. 이 다섯 작품은 그 필치가 모두 유사하여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중 인수봉 도봉산의 전경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도봉도」는 표제에 의하면 당대의 명류인 이재학(李在學)[1745~1806], 서용보(徐龍輔)[1757~1824] 등이 도봉산에서 산책한 기념으로 만든 『도봉첩(道峰帖)』에 있던 그림이다.

「도봉도」의 전체적인 구도, 즉 전경의 언덕 포치와 타원을 이룬 구도, 개울과 언덕의 대각선 첨가로 형성된 산만해진 화면은 정선의 서울 실경도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양식이며, 수지법, 적묵의 바위 표현 역시 정선의 화풍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농묵과 담묵으로 산의 중량감을 표현한 것이라든지, 화면 전체에 청색, 녹색의 선염을 풍부하게 사용한 점, 그리고 원경에 보이는 굵은 필선의 펜촉 모양 암석의 형태는 김응환으로부터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석신은 특히 굵은 필선의 농묵을 과감히 사용하여 그림 전체에 강한 느낌을 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김응환이 즐겨 사용하던 과감한 파묵법의 영향이다.

다만 김석신의 경우에는 농묵의 필선을 좀 더 날카롭게 사용하여 작품에 긴장감을 더하는 측면이 강한데, 이는 「압구청상도」나 「담담장락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김석신은 그의 양아버지 밑에서 화업에 정진하면서 김응환이 이미 습득한 바 있는 심사정, 강세황, 정선 화풍의 적절한 영향을 고루 받았고, 형 김득신이 정진한 김홍도의 화풍까지도 함께 수용하고 있다. 김석신의 이런 절충적 경향은 선대 화풍을 기본으로 하고 당시 유행 화풍을 계속 받아들이는 화원 화가들의 일면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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