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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88
한자 洪性裕墓所
분야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928년 10월 4일 - 홍성유 출생
조성 시기/일시 2002년 11월 24일연표보기 - 1980년 11월 15일 조성한 부인 조성옥의 묘와 홍성유를 합장묘로 조성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2002년 11월 24일 - 홍성유 사망
현 소재지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방학 3동 산69-1](북위 37°39‘57.066“, 동경 127°1‘24.318“)지도보기
성격
양식 합장묘
관련 인물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1928~2002]
봉분 크기/묘역 면적 45㎡[13.61평]
관리자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소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있는 현대 소설가 홍성유의 묘.

[개설]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1928~2002]는 활달하고 남성적인 문체를 바탕으로 대중적 역사 소설을 즐겨 쓴 소설가이다. 김두한(金斗漢)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국 근대사의 이면을 그린 『인생극장』이 대표작인데, 뒤에 이를 『장군의 아들』[전 8권]로 제목을 바꾸어 발간하였다. 1990년에 임권택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하여 널리 알려졌다.

홍성유는 1928년 10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동 고등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 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한국 일보』에 장편 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잡지 『신사조』 주간, 한국 문인 협회 이사,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이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 소설가 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홍성유는 식도락가로도 유명해 경향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발굴하고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666점』[1987]과 『한국 맛있는 집 1234점』[1999] 등을 잇달아 발간함으로써 오늘날 별미 기행 문화를 선도하였다. 소설로는 『비극은 있다』[1978], 『수평선에 별 지다』[1980], 『정복자』[1993] 등이 있다. 대한민국 예술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예술 문화 대상, 보관 문화 훈장 등을 받았다.

2001년 2월 뇌출혈로 쓰러져 이듬해인 2002년 11월 24일 타계하였다. 한국 소설가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천주교 혜화동 교회 방학동 추모 공원에 안장되었다. 1980년에 사망하여 이 자리에 먼저 묻혀 있던 첫 부인 묘에 합장하였다.

[위치]

홍성유 묘(洪性裕墓)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번지[방학 3동 산69-1]에 있다.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 사무소 바로 앞개울을 건너 2~3분 걸리는 야트막한 능선을 넘은 다음, 다시 계곡물을 건너 뚜렷이 동북 방향으로 나 있는 등산로[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으로부터 올라온]를 따라 2분쯤 오르면 길가 왼쪽에 부부 합장묘가 위치해 있다.

[형태]

흙으로 된 곡장(曲墻)을 등산로에 바로 붙여 둥그렇게 다듬은 봉분이다. 부부 합장묘라 봉분은 1기다. 묘 앞에는 조그마한 상석(床石)과 향대(香臺)가 있고, 왼편으로 비켜 자리한 오석(烏石)으로 된 비석이 묘의 주인을 알려 주고 있다. 묘역 면적은 45㎡[13.61평]이다.

[금석문]

장방형 비신[76×14×48㎝]의 앞면에는 ‘남양(南陽) 홍공(洪公) 토마스 모어 성유(性裕), 한양(漢陽) 조씨(趙氏) 에반젤리 성옥(成玉) 지묘(之墓)’라 한자와 한글로 제한 아래에 부부의 생몰년을 나란히 적었다. 뒷면에는 얌전한 행서로 “백파(伯坡) 선생님 여기 잠들다. 벗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맛과 멋을 즐기던 선생님 당신은 언제나 따뜻함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하늘처럼 맑게, 학처럼 고고하게 일생을 사셨던 가슴 넉넉한 신사였습니다. 이제 이 따뜻한 언덕에 편히 쉬소서”라고 새겼다. 그 아래에는 유일한 혈육인 딸 홍다영의 가족 이름이 병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중 소설가라고 폄하하는 발언을 더러 듣기도 하였지만, 홍성유의 활동은 우리 근대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중요 자산으로 손꼽아야 옳다. 따라서 홍성유의 묘 위치와 생애를 안내하는 설치물이나 게시물을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권영민 편, 『한국 근대 문인 사전』(아세아 문화사, 1990)
  • 인터뷰(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 사무소장 안병하, 76세, 20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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