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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772
한자 漢陽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북한산군에서 한양군으로 개칭됨
성격 지방 행정 구역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전제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각종 관직명과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한화 정책(漢化政策)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 757년(경덕왕 16)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에 이르는 지방 행정 단위의 명칭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쳤다. 오늘날 도봉 지역을 관할하던 북한산군(北漢山郡)도 이 무렵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지리지2 한주(漢州) 한양군조에는 “한양군은 본래 고구려 북한산군으로 평양(平壤)이라고도 한다. 진흥왕이 주(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양주(楊州) 옛터에 있다. 영현(領縣)은 2개로, 황양현(荒壤縣)은 본래 고구려 골의노현(骨衣奴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풍양현(蘴壤縣)이다. 우왕현(遇王縣)은 본래 고구려 개백현(皆伯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행주(幸州)이다”라고 되어 있다. 한편 『고려사(高麗史)』 권56 지리지1 양광도(楊廣道)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주도호부(楊州都護府)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 한성부(漢城府)조 역시 한양군을 고려 초기에 양주로 고쳤다는 짤막한 기록이 실려 있다.

[내용]

한양군은 신라의 9주 가운데 하나인 한주 소속이었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소재의 아차산성(峨嵯山城) 발굴 조사에서 한양군의 옛 이름인 북한산군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북한(北漢)’과 ‘한산(漢山)’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 일대가 통일 신라 시대 한양군의 중심지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양군은 2개의 영현을 거느렸는데, 황양현은 남양주시(南楊州市) 진접읍(榛接邑) 일대로, 우왕현은 고양시(高陽市) 덕양구 행주내동(幸州內洞) 및 행주외동(幸州外洞)으로 비정된다.

[변천]

한양군은 고려 초기 양주로 바뀌었다가 1067년(문종 21)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1099년(숙종 4) 남경 일대를 돌아본 숙종은 남경으로의 천도 계획을 세우고 1104년 5월 궁궐을 완성하였으나, 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무렵 이전의 치소(治所)를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로 이름을 고쳤다. 1395년(태조 4)에 한양부한성부로 고치고 관할 구역을 도성에서부터 약 3.93㎞[10리]로 축소하면서, 이전의 한양부 영역 중 한성부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치소를 견주(見州)[현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고읍리 일대]로 옮기고, 견주양주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이에 소속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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