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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087
한자 流滿里
이칭/별칭 유만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집필자 김세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유만리 노해면 창동리로 통합됨
성격 옛 지명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유만리(流滿里) 앞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모든 곡식의 종자를 얻을 수 있다는 ‘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들에 큰 늪이 있어서 물이 늘 가득하였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유만이’라고도 하였고, 일명 한내·한천이라고도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자연 마을로 형성된 유만리는 1914년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노원면해등촌면이 합쳐져 노해면이 설치되면서 해등촌면의 창동리·마산리와 합쳐져 노해면 창동리가 되었다. 1963년 노해면이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창동이 되었고, 1973년 도봉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서울특별시 노원구로 편입되었다가, 1989년 다시 도봉구로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유만리의 정확한 위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서울지명사전』에 의하면, 유만리가 물이 좋았고, 뒤에 이때문에 많은 공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실제로 창동에는 90년대까지도 샘표식품, 창동 대단위 탁주공장, 미원 공장, 쌍용시멘트, 동아건설, 아세아제지, 삼풍제지, 삼화페인트 등 수많은 공장들이 있었다. 이들은 공장 시설의 확대 및 도심 공해 유발 등을 이유로 모두 지방으로 이전하였다.

[관련 기록]

1912년에 발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의하면 양주군 해등촌면유만리를 비롯하여 상누원리, 무수울, 도당리, 우이리, 마산리, 계성리, 영국리, 암회리, 원당리, 창동리, 소라리가 속해 있다. 1917년에 발행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는 노해면에 도봉리, 방학리, 쌍문리, 창동리, 월계리, 공덕리, 하계리, 중계리, 상계리가 속해 있다. 이 중 창동리유만리, 마산리, 도당리, 창동리, 노원면 녹천리 등이 합쳐져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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