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여지도』「경기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179
한자 輿地圖京畿圖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현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36연표보기~1767년연표보기 - 『여지도』「경기도」 작성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용도 지도

[정의]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양주목이 표시된 『여지도』경기도 지도.

[개설]

『여지도(輿地圖)』는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책이다. 그 가운데 『여지도(輿地圖)』「경기도(京畿圖)」는 서울과 경기도 소속 군현, 주요 산과 고개, 왕릉과 서원 등을 간략하게 나타낸 지도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정확한 제작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728년(영조 4)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737년(영조 13) 원래의 읍격을 회복하는 나주목이 『여지도』에서는 나주목으로 표기되어 있는 점, 1728년 폐치되었다가 1736년에 복치(復置)되고 1767년(영조 43)에 다시 개칭한 안의현(安義縣)이 안음현(安陰縣)으로 표기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1736년과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6책 705장[지도 364장, 주기 341장]의 채색 필사본으로 규격은 26.5×19.1㎝이다.

[구성/내용]

『여지도』「경기도」는 지도 중앙부에 서울을 배치하고 붉은 원 안에 ‘경(京)’이라 써서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쉽게 하였다. 나머지 군현들은 주로 황색 원에 지명을 기입하였는데 각 군현의 특성에 맞추어 조금씩 표시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지도에는 지명, 산줄기와 강, 고개와 같은 자연 지물과 함께 왕릉, 서원 등을 표기하고 있으며, 지도의 끝에는 맞닿은 고을과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망이나 봉수대, 사찰 등은 표시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현재의 도봉구가 속해 있던 양주목(楊州牧)은 서울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양주목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황색 원 안에 지명을 표시하고, 주변의 산과 고개, 왕릉만을 기록하였다. 서울과 양주목의 중간 지점에 현재 도봉구에 위치한 도봉 서원(道峯書院)이 표시되어 있는데, 당시 도봉 서원이 중요한 서원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주기(注記)에는 속관(屬官)의 수, 호(戶) 및 전답(田畓)의 총액(總額), 회부곡(會付穀)[환곡], 군총(軍總)[군사의 총수]을 기록하여 참고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여지도』에는 조선의 각 도,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성경 여지전도(盛京輿地全圖)」[중국의 성경(盛京), 심양(瀋陽) 일대가 수록된 지도], 『요계 관방 지도(遼薊關防地圖)』[청나라의 요동과 북경 인근의 군사 형세를 그린 조선 후기의 대형 군사 지도], 「조선 여진 양국 경계도」[18세기 전반에 제작된 여지도 중 서북 지방과 여진족의 발원지인 만주 일대를 그린 지도]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여지도』「경기도」는 일반적인 지도의 실용적 측면 대신 인문·사회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도로망, 봉수대, 역, 사찰 등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대신 왕릉과 서원 등에 한정하여 기록하고 있는 점을 통해 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