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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 청금록 윤증 이름 삭제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15
한자 道峰書院靑衿錄尹拯-削除事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민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694년 - 송시열 도봉서원 배향 문제로 노소론 간 대립
전개 시기/일시 1696년 - 송시열 도봉서원에 배향
발생|시작 시기/일시 1697년연표보기 - 도봉서원 청금록에서 윤증 이름 삭제 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도봉서원 청금록 윤증 이름 삭제 사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종결 장소 도봉서원 청금록 윤증 이름 삭제 사건 - 서울특별시 도봉구
성격 청금록 이름 삭제 사건
관련 인물/단체 윤증

[정의]

조선 후기 도봉서원 유생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부인 청금록에서 윤증(尹拯)의 이름을 지운 사건.

[개설]

청금록(靑衿錄)은 국가가 설치한 유교 교육 기관인 성균관과 사학(四學), 향교, 사설(私設) 기관인 서원 등에서 활동하는 유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명부이다. 도봉서원 유생들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청금록은 도봉서원에 비치되어 있었다. 청금록에는 유학(幼學)·생원·진사의 인적 사항뿐만 아니라 문과에 급제하여 조관(朝官)으로 있는 자도 해당 기록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역사적 배경]

도봉서원 청금록에서 윤증의 이름을 삭제한 사건은 노론과 소론 간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노론과 소론은 애초 같은 서인이었으나, 서인이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강·온파로 갈라졌다. 강경 입장을 취한 노장층을 노론, 온건 입장을 취한 소장층을 소론이라 하였다. 노론의 중심 인물이 송시열이며, 소론의 중심 인물이 윤증이었는데, 1694년 송시열도봉서원에 배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노소 간 대립이 계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696년 송시열도봉서원에 배향되기는 하였으나 이후에도 분쟁은 여전하였다.

[경과]

도봉서원의 청금록 가운데 소론의 영수인 윤증의 이름도 있었는데, 1697년(숙종 23)에 윤증의 이름을 먹으로 뭉개어 잘라내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유생 이의승(李宜繩)은 직장(直長) 한영휘(韓永徽)윤증을 헐뜯다가 그의 이름을 지웠다고 상소하였다. 조정에서는 한영휘이의승을 함께 잡아다 대질하였는데, 한영휘가 계속 혐의를 부인하니 이의승을 함께 잡아다 대질시키고 분변하게 하였다.

몇 달이 지나도록 결단하지 못하자, 좌의정(左議政) 윤지선(尹趾善)이 경연에서 “이의승한영휘의 말을 직접 들었다고 하고, 한영휘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미 증거가 없어 실제로 조사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영휘의 공초(供招) 내용에 사실을 빠뜨린 말이 있으니, 단지 이것을 참작하여 죄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 하여 결국 한영휘를 파직시키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결과]

한영휘는 이 사건 때문에 이후 청 요직에 오를 때 비난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송시열의 업적을 찬양하며 노론의 당론을 앞장서 주장하였다. 위의 사건은 송시열도봉서원에 배향된 지 1년여 만에 일어났는데, 도봉서원이 노론적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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