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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78
한자 豊壤趙氏墓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대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풍양조씨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산53-1(N37°39'58.2600"E127°01'48.2867",N37°39'52.8523"E127°01'44.21547" )지도보기
성격 묘역
관련 인물 조세훈(趙世勛)|풍양군(豊壤君) 조기(趙磯)|조희철(趙希轍)|조희보(趙希輔)|풍흥 부원군(豊興府院君) 조인수(趙仁壽)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시대 풍양조씨 문중의 묘역.

[개설]

풍양조씨(豊壤趙氏)의 관향은 경기도 양주(陽州)로, 풍양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를 부르는 옛 이름이다. 풍양조씨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와 함께 조선 후기 세도 정치기(勢道政治期)에 정권을 담당한 대표적인 가문이다. 풍양 조씨는 4개의 파(派)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 회양공파(淮陽公派)에서 많은 고관(高官)이 나왔다. 숙종 대 대사헌·이조 및 예조판서·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 영조 대 좌의정을 지낸 조문명(趙文命)과 영의정을 지낸 조현명(趙顯命) 형제, 국구(國舅)이자 헌종 대 영돈녕부사를 지낸 조만영(趙萬永),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조인영(趙寅永) 형제 등이 유명하다. 이러한 인물들의 누대에 걸친 현달을 통해 세도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위치]

풍양조씨 묘역(豊壤趙氏墓域)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도봉산 시루봉 남쪽 주변에 두 곳이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36-1번지의 묘역은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 동쪽 구릉의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다. 중종 대 분의 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조세훈(趙世勛), 그 양자인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풍양군(豊壤君) 조기(趙磯), 조기의 장남 조희철(趙希轍)의 묘가 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53-1번지에 위치하는 묘역은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 서쪽에 위치하며, 조기의 셋째 아들 분승정원승지(分承政院承旨) 조희보(趙希輔) 및 후손인 풍흥 부원군(豊興府院君) 조인수(趙仁壽)의 묘가 있다. 우의정을 지낸 조상우(趙相愚)조희보의 손자이고, 정승 조문명·조현명조인수의 아들이다. 두 묘역은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형태]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 동쪽 묘역은 전체적으로 서남향이다. 분의 정국공신 조세훈은 단분으로, 묘표는 하엽형이다. 문인석과 망주석, 장명등을 갖추고 있다.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 서쪽 묘역은 상단에 조희보 묘가 있고, 그 아래에 조인수 묘가 있다. 전체 묘역은 남동향을 하고 있다. 조희보 묘는 쌍분으로 근래에 호석(護石)을 둘렀다.

좌측 봉분은 조희보와 부인 교하 노씨(交河盧氏)의 합장묘이고, 우측 봉분은 계실인 강릉 최씨(江陵崔氏)의 묘이다. 묘표 2기,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과 근래 건립한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묘비 등을 갖추고 있다. 조인수 묘는 단분으로, 묘역의 입구 좌측에 옥개형의 조인수 묘갈이 있다. 서울 신방학 초등학교 근처에 풍양군 사당과 풍양군 재실이 남아 있다.

[금석문]

1632년(인조 10)에 건립된 풍양조씨의 시조인 조맹 묘갈(趙孟墓碣)이 전한다. 비는 조선 시대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장유(張維)가 비문을 지었고, 이현(李鉉)이 글씨를 썼으며, 숭덕대부(崇德大夫)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가 전액을 썼다. 비문에 의하면 조맹은 애초에 전야(田野)에 은둔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하나, 고려 태조(太祖)가 일어났을 때 태조를 한 번 만나고는 마음이 맞아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여러 차례 공적을 세워 벽상공신(壁上功臣)의 호를 받은 뒤에 관직이 시중(侍中)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풍양조씨 묘역에는 중종 대 분의 정국공신 조세훈을 비롯하여 그의 양자인 풍양군 조기, 조기의 장남인 조희철과 셋째 아들인 조희보에 이르는 3대의 묘 및 후손인 풍흥 부원군 조인수의 묘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00여 년 넘게 걸쳐 조성된 묘역으로서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묘제와 석물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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