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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07
한자 朴世采
이칭/별칭 현석(玄石),남계(南溪),화숙(和叔),문순(文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1년연표보기 - 박세채 생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박세채 식년 진사시 2등 2위
몰년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 박세채 졸
추모 시기/일시 1698년 - 박세채 문순(文純) 시호 받음
출생지 박세채 출생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부임|활동지 박세채 활동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지도보기
묘소|단소 박세채 묘소 - 황해도 평산군 면곡리
성격 유학자|문신
성별
본관 반남
대표 관직 도봉 서원 원장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 원장을 지낸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 할아버지는 우참찬을 지낸 박동량(朴東亮)이고, 아버지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박의(朴猗)이다. 외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내고 조선 후기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인 신흠(申欽)이다. 박세채(朴世采)[1631~1695]의 집안은 서울·경기 지역에 세거하던 서인 명문가로서, 송시열(宋時烈)의 손자를 사위로 맞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박세채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이이(李珥)를 존숭하여 그를 사숙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659년(현종 즉위년) 산림(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선비]으로 천거 받아 익위사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2차 예송 때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하였던 예설이 문제가 되어 사판(仕版)에서 삭제당하는 벌을 받고, 1680년(숙종 6) 경신출척(庚申黜陟)으로 서인이 재집권할 때까지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후 환국기의 정국 변동에 따라 서인계의 주요 인물로서 부침을 거듭하는 와중에 사헌부 집의·동부승지·대사헌·이조판서·우참찬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박세채는 서인 내부의 노론·소론 간 대립 구도에서 양자를 조정하고 대립을 막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이후 소론 계열의 사람들과 학문적·정치적 교류를 주로 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소론계의 지도자로서 우의정·좌의정에 연달아 올랐으며, 그의 ‘황극 탕평론(皇極蕩平論)’을 바탕으로 숙종의 탕평 교서를 작성하는 등 초기 탕평 이론 설계에 공헌하였다.

박세채는 집안이 대대로 도봉산 기슭인 의정부 호원동에 살고 있었고, 예송으로 인한 정치적 수난기에 양주 금곡에 거주하였던 만큼 도봉산이나 도봉 서원에 왕래할 기회가 잦았다. 1694년(숙종 20) 재상으로 있으면서 도봉 서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그의 문집인 『남계집(南溪集)』 12권에는 도봉 서원 유생들에게 보냈던 2통의 서간이 남아 있다. 한 통의 편지는 자신이 서원의 부원장직을 수락하느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아 1694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1695년(숙종 21) 1월 23일에 보낸 것으로, 송시열조광조(趙光祖)와 함께 도봉 서원에 합향(合享)하는 문제를 조정에서는 바꿀 수 없다는 내용이다. 박세채송시열도봉 서원 배향 문제에 대해 대체적으로 찬성의 견해를 보였지만, 이 서간에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학문과 저술]

박세채는 특별한 스승 없이 이이를 사숙하였기 때문에 그의 학문적 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아버지가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서인 계열의 학문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저서로 『춘추보편(春秋補編)』·『심학지결(心學至訣)』·『양명학변(陽明學辨)』·『이학통록보집(理學通錄補集)』·『이락연원속록(伊洛淵源續錄)』·『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남계선생예설(南溪先生禮說)』·『육례의집(六禮疑輯)』·『범학전편(範學全編)』·『주자대전습유(朱子大全拾遺)』 등이 있다.

[묘소]

묘는 황해북도 평산군 면곡리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1698년(숙종 24) 문순(文純)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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