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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49
한자 柳溥
이칭/별칭 언박(彦博),유장(柳蔣),문성(文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5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92년 - 유보 진사시 합격
묘소|단소 유보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5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진주(晉州)
대표 관직 영중추부사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유장(柳蔣), 자는 언박(彦博). 할아버지는 유양(柳壤)이고, 아버지는 유첨정(柳添汀)이며, 어머니는 홍종(洪琮)의 딸이다.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조카이다. 부인은 이심원(李深源)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아들은 유사상(柳師商)이다.

[활동 사항]

유보(柳溥)[?~1544]는 성종 대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에 배속되어 관료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그러나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다시 기용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유보가 주로 활동한 관서는 홍문관과 사헌부, 사간원, 승정원, 중추부 등 중앙의 핵심부서가 많았다. 홍문관에서는 박사·교리·부응교·응교·직제학을 거쳐 부제학까지 역임하였다. 또한 사헌부에서는 지평·장령·집의를 지냈고, 사간원에서는 사간·대사간까지 올랐다.

승정원에서도 동부승지와 좌부승지·좌승지를 거쳐 도승지까지 승진하였다. 또한 중추부의 첨지중추부사·지중추부사·판중추부사·영중추부사를 역임하였고, 의정부 우참찬과 우찬성·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호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내는 등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을 뿐 아니라 전라도 관찰사로 파견되었고,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파견되어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일]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1539년(중종 34) 70세로 궤장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유보의 관직 생활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갑자사화에 연루된 것 외에도, 직무 불성실 내지 부적합을 이유로 반복적으로 탄핵을 받았다. 1537년(중종 32)에는 김안로(金安老)가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그도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였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54번지도봉산 자락 북한산 둘레길 18구간[도봉옛길]에 자리 잡은 진주 유씨 묘역에 있다. 진주 유씨 묘역 일대는 중종반정 이전 유보의 할아버지인 유양(柳壤)이 매입하였으며, 이후 유양 이하 후손들이 대대로 묘를 쓰고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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