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57
한자 朴素立
이칭/별칭 예숙(豫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14년연표보기 - 박소립 생
활동 시기/일시 1534년 - 박소립 식년 생원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582년연표보기 - 박소립 졸
부임|활동지 박소립 활동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함양(咸陽)
대표 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전기 도봉 서원 건립에 기여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예숙(豫叔). 증조할아버지는 사복시 정에 추증된 박신동(朴信童)이고, 할아버지는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박중검(朴仲儉)이다. 아버지는 예조 정랑·안변 부사·내자시 정 등을 지낸 박세무(朴世茂)이며, 어머니는 권잉(權仍)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동생은 수안 군수를 지낸 박응립(朴應立)이다. 부인은 손숙겸(孫叔謙)의 딸인 평해 손씨(平海孫氏)로, 아들 박지언(朴知言)을 낳았다.

[활동 사항]

박소립(朴素立)[1514~1582]은 21세가 되던 해인 1534년(중종 29) 식년 생원시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1544년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양주 신혈리(神穴里)[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에 묘소를 마련하고 삼년상을 마쳤으며, 1564년(명종 19) 말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같은 곳에 합장하고 삼년상을 마쳤다. 1555년(명종 10) 식년시에 응시하여 을과 2위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승정원 주서로 부임한 뒤 홍문관의 정자와 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563년(명종 18) 명종의 척신 이양(李樑)이 상피법(相避法)을 어기고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병조좌랑에 천거하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이조좌랑을 지내던 박소립윤두수(尹斗壽)·기대승(奇大升)과 함께 반발하였다가 이양의 사주를 받은 이감(李戡)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윤원형(尹元衡)심의겸(沈義謙)의 적극적인 구제 덕분에 파직된 지 한 달 만에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되었다. 이후 선조 즉위에 기여한 공로로 중용되어 대사성·대사헌·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573년(선조 6) 양주 목사 남언경(南彦經)도봉 서원 건립을 추진하자 공사 비용을 적극 원조하기도 하였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