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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94
한자 尹義立
이칭/별칭 의립(義立),지중(止中),월담(月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8년연표보기 - 윤의립 생
활동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윤의립 양주 목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43년연표보기 - 윤의립 졸
부임|활동지 윤의립 부임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성격 문신|화가
성별
본관 파평(坡平)
대표 관직 양주 목사

[정의]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화가.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의립(義立), 자는 지중(止中), 호는 월담(月潭).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윤정림(尹廷霖)이고, 할아버지는 현령 윤희렴(尹希廉)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윤국형(尹國馨)이며, 어머니는 경력(經歷) 조수(趙琇)의 딸인 평양 조씨이다. 첫 번째 부인은 군기시 정(軍器寺正) 박문영(朴文榮)의 딸인 죽산 박씨(竹山朴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양주 목사를 지낸 정약(鄭爚)의 딸인 초계 정씨(草溪鄭氏)이다. 문인 화가였던 윤정립(尹貞立)이 동생이다.

[활동 사항]

윤의립(尹毅立)[1568~1643]은 1594년(선조 2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제수 받고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02년(선조 35)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속해 있던 경기도 양주목의 목사에 제수되었다. 1606년(선조 39) 경기 암행어사 심집(沈諿)의 보고에 의하면, 양주 사람들이 윤의립을 사모하여 구리를 모아 거사비(去思碑)를 세우려 한다며 이미 체직된 수령이지만 민간에게 사랑과 은혜를 끼친 일을 묻어 버릴 수 없어 보고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윤의립의 양주 목사 시절 활동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훌륭한 목민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624년(인조 2) 조카가 이괄(李适)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면서 윤의립도 관직에서 물러났다. 2년 후 다시 복직되어 경주 부윤에 올랐으며, 이어 경상도와 함경도, 충청도, 경기도의 관찰사와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두루 거치고 의정부 좌참찬이 되었다.

[학문과 저술]

글과 그림에 능하고 산수화로 이름이 있었다. 『동국문헌(東國文獻)』 화가편(畵家篇)에서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전한다. 현재 전해지는 그림은 그 수가 별로 많지 못하여 국립 중앙 박물관의 『산수화첩(山水畵帖)』 정도만 알려져 있다. 『산수화첩』에서 보이는 산의 모습이나 표면의 처리는 15세기 화풍과 함께 윤의립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림 외에 저서로 『야언통재(野言通載)』와 『산가청사(山家淸事)』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1791년(정조 15) 양주목의 묘소에 묘갈(墓碣)이 건립되었다. 5세손 윤필한(尹弼漢)이 돌을 세우고 윤생만(尹生晩)이 서(序)를 지었으며, 역시 5세손 윤필병(尹弼秉)이 명(銘)을 짓고 아울러 글씨를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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