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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66
한자 沈廷觀
이칭/별칭 계빈(季賓)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4년 2월 18일연표보기 - 심정관 생
활동 시기/일시 1725년연표보기 - 심정관 송시열의 도봉 서원 복향 상소에 참여
몰년 시기/일시 1779년 8월 9일연표보기 - 심정관 졸
묘소|단소 심정관 묘소 -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청송(靑松)
대표 관직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字)는 계빈(季賓)으로 청송 심씨(靑松沈氏) 16세손이다. 이조판서로 추증된 심수견(沈壽堅)과 부평 이씨(富平李氏)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부인 해주 최씨(海州崔氏)와 혼인하여 1남을 두었고 둘째 부인인 우봉 이씨(牛峰李氏)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심정관(沈廷觀)의 오종손(五從孫)인 심정진(沈定鎭)이 지은 『제헌집(霽軒集)』에 심정관의 행장(行狀)의 실려 있다. 여기에 따르면, 심정관은 1694년(숙종 20) 2월 18일 한양에서 태어나, 1744년(영조 20) 진사시에 합격했다. 1754년(영조 30) 영희전 참봉(永禧殿參奉)을 시작으로 호조좌랑(戶曹佐郞), 형조정랑(刑曹正郞),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 부호군(副護軍) 등의 관직을 거쳤고 1774년(영조 50)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779년(정조 3) 8월 9일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심정관은 노론(老論)으로서 정치적 활동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1722년(경종 2) 신경제(申慶濟) 등 소론(少論)이 송시열(宋時烈)의 관작과 시호를 추삭(追削)하고 윤증(尹拯) 부자의 관작을 복귀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여기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듬해인 1723년(경종 3) 김범갑(金笵甲) 등이 송시열도봉 서원에서 출향(黜享)하라는 상소를 올리자 대궐 앞에서 부복, 상소하기도 했다. 노론이 집권한 후인 1725년(영조 1) 송시열도봉 서원 복향(復享), 권상하(權尙夏)의 복관(復官)을 요구하는 상소에 참여했고 1752년(영조 28)에는 송시열송준길(宋浚吉)의 문묘(文廟) 배향 상소에 동참했다.

[묘소]

행장에는 광주(廣州) 성곶면(聲串面) 고잔리(高棧里)에 있는 아버지 심수견 묘 근처에 첫째 부인 해주 최씨와 합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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