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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79
한자 承克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76년 4월 11일 - 존호 옥보 차비로 말 한 필을 포상 받음
추모 시기/일시 1694년 - 묘표 건립
묘소|단소 승극철 부부 묘 -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 산68~창동 산137-11지도보기
성격 내시(內侍)
성별
대표 관직 내시부 상세(內侍府 尙洗)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내시.

[가계]

승극철선조(宣祖) 대의 내시 김계한(金繼韓)[?~1625]의 손자로서, 김계한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시중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봉되었고 숭록대부(崇祿大夫)에까지 올랐으며, 내시가로 알려진 연양군파(延陽君派)의 시조이다. 승극철의 가계에 대하여 이 밖의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활동 사항]

승극철의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86년에 포상으로 어린 말 한 필을 사급(賜給) 받은 기록이 있으며 그의 묘비가 1694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므로 대체로 1687년~1693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676년(숙종 2) 4월 11일에 존호 옥보 차비(尊號玉寶差備)로서 종묘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와 부묘 친제(祔廟親祭)에 참여하여 말 한 필을 하사받았고, 1682년(숙종 8) 10월 28일에는 주방(酒房), 1686년(숙종 12) 윤4월 9일에는 주사 내관(注事內官)의 자격으로 왕실 행사에 참여했다가 역시 포상으로 말 한 필을 받았다. 사망할 당시에는 통훈대부(通訓大夫)로서 내시부 상세(內侍府尙洗)[정6품 관직]를 지냈다.

[묘소]

승극철 부부 묘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 일대에 걸쳐 있는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속해 있으며, 인덕대학교 뒷산인 매봉에 위치하고 있다. 초안산에서 발견된 내시의 묘로서는 최초이며, 서향의 쌍분으로 묘표·혼유석·상석 등을 갖췄다. 묘표의 규모는 높이 117.5㎝, 폭 51.5㎝, 두께 16.5㎝이며, 전면에는 ‘통훈대부 행내시부 상세 승공 극철 양위지묘(通訓大夫行內侍府尙洗承公克哲兩位之墓)’라고 새기고 후면에는 ‘숭정 기원후 갑술 삼월 일 립(禎紀元後甲戌三月日立)’이라고 새겼다. ‘숭정 기원후 갑술년’은 1634년이지만 실은 ‘재갑술(再甲戌)’의 오기로 추정되고 있으며 따라서 묘표가 세워진 시기 역시 1694년 혹은 그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후손이 미미하여 현재는 묘역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내시도 결혼했음을 알려주는 ‘양위지묘(兩位之墓)’란 표기로 유명한 승극철의 묘표는 조선 시대 양반을 비롯, 다양한 계층의 분묘 1,000여 기가 집중 분포해 있는 초안산의 조선 시대 분묘군이 처음에 내시들의 집단 묘역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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