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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724
한자 全泰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8년 8월 26일연표보기 - 전태일 생
활동 시기/일시 1969년 9월연표보기 - 전태일 평화 시장 노조 바보회 창립
몰년 시기/일시 1970년 11월 13일연표보기 - 전태일 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 『전태일 평전』 출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11월 18일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개봉
추모 시기/일시 2005년 9월 30일 - 청계6가에 반신 부조상 설치
출생지 전태일 출생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거주|이주지 전태일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56지도보기
묘소 전태일 묘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모란 공원
성격 노동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청계천 평화 시장 노조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살았던 노동 운동가.

[가계]

전태일(全泰壹)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전상수, 어머니 이소선(李小仙) 사이의 2남 2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전태일이 죽은 후 노동 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여동생 전순옥도 노동 운동가가 되어 활동하였고 2012년에 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활동 사항]

전태일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1964년 17세의 나이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 ‘시다’ 즉 미싱사 보조로 취직하였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꼬박 3년을 보내고 미싱사, 재단 보조 등을 거쳐 오랜 소원이던 ‘재단사’가 되었다. 14시간 노동을 하며 당시 차 한 잔 값이던 일당 50원을 받았는데, 자신보다 더 어린 나이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68년에 우연히 「근로 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고는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에는 평화 시장 최초의 노동 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창립하여 「근로 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 활동은 사업주들의 탄압으로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이 일로 평화 시장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

1970년 9월 평화 시장으로 돌아온 전태일은 재봉사보다 지위가 높은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 친목회를 조직하였다. 다시 노동 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이 내용이 『경향 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자 전태일 등 삼동회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으나 정부의 약속 위반과 사업주들의 무시로 번번이 좌절을 겪게 되었다.

이에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 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 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 시장 앞에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는 등 시위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을 때, 전태일은 갑자기 몸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붙이고,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평화 시장 앞을 달리다가 쓰러졌고, 그날 밤 사망하였다. 이후 전태일의 유지를 받든 어머니 이소선을 비롯한 노동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청계 피복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정기 건강 진단, 일요일 휴무 등이 관철되었다.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근무하던 시절 거주했던 곳이 도봉구 쌍문동 208번지였으며, 현재의 지번은 도봉구 쌍문동 56번지로 삼익 세라믹 아파트가 들어섰다. 삼익 세라믹 아파트 112동이 전태일의 집이 있던 곳이다.

[저술 및 작품]

1983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조영래『전태일 평전』을 저술하였고, 1991년에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1995년에는 전태일의 생애를 다룬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개봉되었다.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의 마석 모란 공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전태일은 2001년 「민주화 운동 보상법」에 따라 정부에 의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한국 노동계에서는 전태일의 기일을 기려 매년 11월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 민중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도봉구에는 전태일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이래 유난히 독립운동이나 사회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그래서 도봉구에서는 전태일함석헌(咸錫憲), 계훈제(桂勳梯), 영화배우 문예봉(文藝峰)과 소설가 홍명희(洪命憙) 등 도봉구에 거주했던 역사 문화인들의 옛 집터를 돌아보는 도봉 현대사 인물 길을 만들어 이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 조영래, 『전태일 평전』(돌베게, 1991)
  • 전태일 재단(http://www.chuntaeil.org)
  • 도봉구 문화 관광(http://tour.dobo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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