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355
한자 大學校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송란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대학 교육 기관.

[개설]

대학교는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인간의 지성을 개발하고, 진리 탐구의 창조적 활동을 통하여 인류가 쌓은 높은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학문 공동체이다. 우리나라는 「고등 교육법」 제28조에서 “대학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 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대학 교육의 이념과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이념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대학은 해방 이후 55년 동안 양적, 질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는 오직 덕성 여자 대학교 하나밖에 없어 오늘날 대학과 지역 사회의 관계가 날로 긴밀해져 가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변천]

덕성 여자 대학교는 1920년 배화 여학교 교사 출신인 차미리사가 설립한 여자 야학회를 모태로 설립된 학교로서, 이를 기점으로 한다면 근 8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학교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운동의 방향을 교육, 산업의 진흥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 실력 양성 운동으로 전환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경부터 민립 대학 설립 운동, 물산 장려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고, 각종 야학의 설립도 크게 늘어났다. 여자 야학회의 설립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를 주도한 것은 조선 여자 교육회였다.

그 후 여자 야학회는 근화 학원으로 개칭하고 주야간을 통해 보통 과정과 고등 과정의 신교육, 주로 계몽적 성격의 단기 속성 여성 교육을 실시하였다. 1925년에는 교사를 안국동으로 옮기고 근화 여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34년에는 재단 법인 근화 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이듬해 9월 근화 여학교를 근화 여자 실업학교로 개명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황민화 정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근화=무궁화’ 라는 교명이 총독부 당국의 비위에 거슬린 결과, 교명은 다시 덕성으로 개명되었다.

덕성 여자 실업학교가 덕성 여자 대학교로 확대, 발전 된 것은 6·25 전쟁 기간 중인 1952년 3월의 일이었다. 현대 덕성 여자 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과 도봉구 쌍문동에 각각 캠퍼스를 가지고 있지만, 운니동 캠퍼스는 평생 교육원만 자리 잡고 있을 뿐, 모든 공식적 대학 교육은 쌍문동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쌍문동 캠퍼스는 인문 과학 대학, 사회 과학 대학, 정보 미디어 대학, 자연 과학 대학, 약학 대학, 예술 대학의 6개 대학 37개 전공 분야에 5,160명의 학생을 수용하고 있다. 또 덕성 여자 대학교 대학원은 16개 학과에 설치되어 109명의 대학원생을 교육하고 있다. 덕성 학원은 덕성 여자 대학교 외에도 덕성 여자 고등학교, 덕성 여자 중학교, 운현 초등학교, 운현 유치원, 덕성 여자 대학교 부속 유치원 등 6개의 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 『도봉 구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1999)
  • 도봉구청(http://www.dobong.go.kr)
  • 서울특별시 북부 교육 지원청(http://www.ben.go.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