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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78
한자 七夕
이칭/별칭 머슴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육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7월 7일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7월 7일에 지내는 풍습.

[개설]

칠석 은 음력 7월 7일을 말하는데, 견우와 직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세시 풍속이다. 칠석과 연관된 견우와 직녀에 관한 전설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로 전래되고 있다.

천계(天界)의 목동인 견우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목동이었는데, 옥황상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부부는 사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일에 소홀하게 되고, 이들 때문에 천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인간도 천재와 기근에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가 둘 사이를 갈라놓고 7월 7일 하루만 만나게 하였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놓아 둘을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천문 현상이 설화화가 된 것이다.

칠석 을 소재로 시를 짓기도 했으며,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의 향상을 빌기도 하는 등 다양한 풍속이 있었다. 칠석날은 일꾼들을 쉬게 한다고 하여 머슴날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칠석 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나는데,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를 거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칠석 설화 및 다양한 풍속이 형성된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평안남도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하였다고 추정되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남아 있다. 또 고려 공민왕은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도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궁중 밖에서 행해진 활발한 칠석 풍속에 대해 적고 있다. 서당에서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로 하여 시를 짓게 했으며,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칠석날은 면면히 전승되고 있는데, 근래에는 영화나 뮤지컬 등 문화 예술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며, 불꽃놀이나 다양한 공연을 담은 축제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절차]

도봉구에서는 이날 밀전병과 막걸리를 준비해서 칠성님께 제를 지냈다. 밀전병은 애호박을 잘게 썰어서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부친 음식이다. 상 위에 밀전병을 차려 놓고 ‘칠성님께 드립니다.’고 말한 후에 먹는다. 이렇게 하는 일을 ‘밀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칠석날 아침이나 저녁에 부녀자들이 뒤꼍의 장광, 장독대에 제물을 차려 놓고 북두칠성에게 가족의 장수나 집안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하였다. 이는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명이나 수명을 점지한다고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불교 신자의 경우에는 절에 가서 칠성각에 모셔진 칠성님에게 수명장수를 빌기도 하였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는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에게서 채록한 칠석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일부 불교 신자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한편 이날은 유두와 마찬가지로 밀전병을 부쳐 먹는다. 역시 집안의 주요 가신(家神)에게 한 그릇씩 올린 다음 식구들이 먹는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칠석 전날에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서 느끼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내리는 비는 이별 때문에 생긴 슬픔의 눈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여성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도 있었다. 칠석날 새벽에 참외, 오이 등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향상되기를 빌었다. 이 풍속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근래에는 부녀자들이 직접 바느질을 하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거의 사라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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