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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식 묘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820
한자 朴魯植墓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930년 2월 4일 - 박노식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95년 4월 3일 - 박노식 사망
조성 시기/일시 1995년 4월연표보기 - 박노식 묘 조성
현 소재지 박노식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방학 3동 산69-1](북위 37°39`58. 710, 동경 127°1`4.668)지도보기
성격 묘소
관련 인물 박노식(朴魯植)[1930~1995]
봉분 크기/묘역 면적 묘역 면적 60㎡
관리자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소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있는 현대 영화배우 박노식의 묘.

[개설]

박노식(朴魯植)[1930~1995]은 1960~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액션 영화배우이다.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대종상·청룡상·아시아 영화제·부일 영화상·남도 영화제 등에서 많은 수상을 하였다. 박노식은 1930년 2월 4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나 순천 사범 학교 체육과를 졸업하였다. 순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24세 때 악극단에 들어가면서 배우 쪽으로 길을 틀었다. 1955년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격퇴」로 영화계에 데뷔한 뒤 이듬해 「5인의 해병」에 참여함으로써 액션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마도로스 박」[1964], 「명동 노신사」[1970], 「운전수 용팔이」[1971] 등 명동 시리즈와 용팔이 시리즈를 통해 당대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로 부상하였다. 1967년 「메밀꽃 필 무렵」으로 남도 영화제, 부일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각종 영화상을 모두 60여 차례에 걸쳐 수상하였다. 1970년대에는 직접 제작·감독·주연을 맡아 1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전후 모두 500여 회에 걸쳐 출연한 가운데 8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고발」[1967, 대종상 남우주연상], 「카인의 후예」[1968, 대종상 남우조연상], 「돌아온 팔도 사나이」[1969, 청룡 영화상 남우주연상], 「애꾸눈 박」[1970], 「명동 졸업생」[1971], 「돌아온 용팔이」[1983] 등의 대표작이 있다. 1960년 10월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박노식은 지금의 자리에 가족묘를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82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 옆에 묘를 조성하였고, 그 발치께 한쪽에 박노식의 묘가 있다.

[위치]

박노식 묘(朴魯植墓)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번지[방학 3동 산69-1]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내에 있다.

[형태]

박노식의 가족묘는 작가 염상섭 묘에서 좌북방 직선거리로 20m 정도 언덕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남향의 묘소 앞에는 백목련이 한 그루가 서 있다. 인접한 묘소들과 비슷한 크기의 화강암 둘레돌[210×270×45㎝] 위에 봉분을 하고 잔디를 입혔다. 묘 앞 오른쪽에 치우쳐 오석(烏石)으로 된 비석을 세웠는데, 장방형 비신[76×14×47㎝]의 네 면 모두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석문]

묘비의 앞면에는 가로로 ‘영화인 박노식 이냐시오 김용숙 글라라 지묘’라 한자와 한글을 섞어 음각하였다. 뒷면에는 영화 데뷔 연도, 출연 편수, 주연 작품 수, 감독 작품 수 등과 함께 각종 영화제 수상 경력 등이 음각되어 있고, 그 아래에 후손들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아들 박준규와 딸 박선영, 박선경, 박선빈의 가족 이름과 함께 비문의 글씨를 동생 박노연(朴魯衍)이 썼다는 사실도 밝혀져 있다. 비신의 좌측 측면에는 아내 글라라의 생년, 우측에는 박노식 이냐시오의 생몰년이 적혀 있다.

[현황]

원래 부모 묘 아래에 자신과 형제의 묘를 나란히 쓰려는 듯 다소 넓게 터를 잡고 있어 묘소의 분위기가 시원하다. 하지만 묘의 전면에 4~5m 높이 백목련이 자라고 있어 그늘지는 것이 다소 우려된다.

[의의와 평가]

한국의 영화계를 대표하는 중요 인물이었던 만큼 묘를 안내하는 이정표나 문화 지도, 설명 등을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 사무소장 안병하, 76세, 20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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