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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규 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82
한자 朴信圭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91길 100-5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대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631년 - 박신규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687년 - 박신규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박신규 묘표 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9월 - 박신규 묘 석물 6점 도난당함
현 소재지 박신규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7-1지도보기
성격
양식 쌍분
관련 인물 박신규(朴信圭)[1631~1687]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신규의 묘.

[개설]

박신규(朴信圭)[1631~1687]는 본관이 밀양(密陽)이고, 자는 봉경(奉卿), 호는 죽촌(竹村)이다. 할아버지는 참판 박진원(朴震元)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박계영(朴啓榮)이다. 외할아버지는 유명남(柳命男)이다.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었고, 1660년(현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주 판관을 역임할 때 선정으로 유임되었으며, 좌부승지를 거쳐 1679년(숙종 5)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청백리(淸白吏)로 뽑혀 1680년에 형조판서로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한성 판윤으로 재직 중 아들 박성의(朴性義)의 죄에 연좌되어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좌천되었다가, 1685년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호조판서가 되었다. 서예로 이름이 높았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편저로 『밀양 박씨 족보(密陽朴氏族譜)』가 있으며, 시호는 청숙(淸肅)이다.

[위치]

박신규 묘(朴信圭墓)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7-1번지에 있다. 도봉산역 맞은편 도봉산 입구로 진입하는 길을 따라 약 400m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이 주차장 북쪽 언덕에 자리한다.

[형태]

묘는 쌍분이고, 북향을 하고 있다. 묘표, 상석, 혼유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등을 갖추고 있다. 묘표는 1687년(숙종 13)에 건립되었는데, 원수형(圓首形) 2면 비이다. 비신은 58×20×128㎝ 규모이다. 문인석은 양관 조복(梁冠朝服)을 착용하였고, 볼이 두툼하게 묘사되었다. 총 높이는 137㎝이다. 망주석은 운각에 여의두문(如意頭紋)과 그 아래 염의(簾衣)를 조각하였다. 총 높이는 145㎝이다.

[금석문]

2면 비인 묘표 앞면에는 ‘숭정대부 행호조 판서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박공 신규 지묘 정부인 창원 황씨 부좌(崇政大夫行戶曹判書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 都摠管朴公信圭之墓貞夫人昌原黃氏祔左)’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비신 옆면에는 ‘숭정 후 정묘 팔월 일(崇禎後丁卯八月日)’이라 새겨져 있다.

[현황]

박신규 묘는 상석, 묘표, 혼유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을 갖추고 있어 조선 후기 묘제의 석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후손들에 의해 관리도 잘되어 왔으나 2012년 9월 봉분이 훼손되고 문인석 2점, 상석 1점, 비석 1점, 망부석 2점을 도난당하였다. 석물 6점은 비록 비지정 문화재이기는 하지만, 2012년 현재 문화재청에 도난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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