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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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는 고려가 건국된 918년부터 조선이 건국되는 1392년 이전까지의 역사를 말한다. 고려시대에 서울특별시 도봉구 일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호칭은 숙종 대에 남경(南京)에 도읍을 설치하려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후보지 중에 ‘노원역(盧原驛)·해촌(海村)·용산(龍山)’이 거론되었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지도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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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부녀자들이 허리를 구부려 서로 잡고 있으면 그 위로 어린 여자아이가 노래에 맞추어 밟고 다니며 노는 놀이. 놋다리밟기는 도봉구 지역에서 많은 수의 여성들이 허리를 구부려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다리를 만든 뒤 어린 소녀를 ‘공주’로 뽑아 곱게 입혀서 그 등 위를 천천히 밟고 다니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노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기와밟기, 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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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던 고려 후기의 후비(后妃). 명덕태후 홍씨(明德太后洪氏)는 고려 제27대 충숙왕(忠肅王)의 후비로서 제28대 충혜왕(忠惠王)과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을 낳았으며, 충혜왕이 즉위한 직후부터 충숙왕 때인 1336년까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해당하는 지역인 견주(見州)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남양(南陽). 할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중서사인(中書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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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사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 증조할아버지 안극인(安克仁)은 고려의 공신으로 중대광 우문관 대제학(重大匡右文館大提學)를 역임하고 죽성군에 봉해진 바 있으며, 문정공(文貞公)에 추서되었다. 안극인의 딸은 공민왕의 비인 정비(定妃)이다. 할아버지 안숙로(安淑老)는 조선 왕조 개창 이후 평양 부윤(平壤府尹)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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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세거하는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태조 이성계(李成桂) 이후 수많은 분파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도봉 서원 마을에 전주이씨 영산 부정공파(榮山副正公派)의 세거지가 있으며, 도봉구 도봉동에 전주이씨 영해군파(寧海君波) 묘역, 방학동에 회산군(檜山君) 묘역과 임영 대군파(臨瀛大君波) 오산군(烏山君) 묘가 있다. 전주이씨의 시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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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安濬)과 안영의를 시조로 하고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세장지가 있는 성씨. 죽산안씨(竹山安氏)에는 두 계파가 있다.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를 시조로 하는 계파는 구(舊) 죽산안씨, 고려 때의 죽성군(竹城君)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하는 쪽은 신(新) 죽산안씨라 부른다. 그 가운데 도봉구에 세장지를 두고 있는 안씨는 구 죽산안씨이다. 안극인(安克仁)은 고려 공민왕의 계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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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4월 8일에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리는 풍속.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석가 출가일[음력 2월 8일]과 열반일[음력 2월 15일], 성도일[음력 12월 8일] 등과 함께 불교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이를 부처님 오신 날, 불탄일(佛誕日), 석가 탄신일(釋迦誕辰日), 석탄일(釋誕日), 욕불일(浴佛日) 등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가에서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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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7월 7일에 지내는 풍습. 칠석은 음력 7월 7일을 말하는데, 견우와 직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세시 풍속이다. 칠석과 연관된 견우와 직녀에 관한 전설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로 전래되고 있다. 천계(天界)의 목동인 견우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목동이었는데, 옥황상제가 이를 가상히 여겨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부부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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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의 천축사와 관련된 조선 전기의 왕.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성계(李成桂).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른 후 이름을 이단(李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영흥 최씨(永興崔氏)이다. 목조(穆祖)로 추존된 선조 이안사(李安社)가 원나라의 남경(南京)[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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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행정 구역. 1308년(충선왕 즉위년)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관제 전반을 개정하면서 기존의 남경(南京)을 한양부(漢陽府)로 개편하였다. ‘한양’이란 명칭은 신라 시대의 ‘한양군(漢陽郡)’이라는 지역 명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양광도 남경 유수관 양주 항목에서 “충렬왕(忠烈王) 34년에 고쳐 한양부로 삼았다. 별호(別號)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