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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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서 동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쌍문동의 유래」는 현재 쌍문동에 살던 계성(鷄聲) 부부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정성껏 시묘살이를 하다가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효자문(孝子門)을 두 개 세운 데서 ‘쌍문(雙門)’이라는 동명(洞名)이 생겨났다는 등 3가지 이야기에 대한 지명 유래담이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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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연산군을 비롯하여 조선 태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사건을 왕대별로 다룬 MBC의 드라마. 이병훈이 연출[제6화, 제7화 제외]하고 신봉승이 극본을 썼다.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총 11화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제1화는 1983년, 제2화는 1983년부터 1984년, 제3화는 1984년 1월 9일부터 1985년 2월 26일,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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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하는 개항기의 양주 지도. 『1872년 지방 지도』는 개항기에 제작된 필사본 회화식 지도책으로 국가의 주도로 제작된 전국 단위의 군현 지도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9세기로 넘어 오면서 조선 사회는 세도 정치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민생의 안정이 크게 위협 받았으며, 서구 열강과 접촉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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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사찰. 광륜사(光輪寺)는 673년 의상 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사찰 이름은 만장사(萬丈寺)였으며 천축사(天竺寺), 영국사와 더불어 도봉산의 대표적인 가람으로 성장하였다.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쇠락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신정 왕후(神貞王后)[1808~1890]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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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부터 현대까지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교육. 1. 조선 시대 고려 시대까지의 서울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해주는 자료는 없다. 서울 교육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서울 지역에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성균관을 두고, 중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사학 외에, 초등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당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과 사학, 향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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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넓은 강변이나 모래사장, 마당 같은 곳에서 큰 나무의 가지나 두 기둥의 가로지른 막대에 그네를 달아 포물선을 그리며 왔다 갔다 뛰는 민속놀이이다. 그네는 지방에 따라 근데, 군데, 근듸, 군듸, 근의, 군의, 그리, 구리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그네뛰기는 도봉구 지역에서 음력 5월 단오에 주로 여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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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인 1876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역사. 1. 행정 구역의 변천 조선 시대 초부터 1895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목(楊州牧)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을 단행하면서 지방 제도를 본격적으로 개혁하였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를 발포하여 종래의 8도제(道制)를 23부제(府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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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도봉 서원 중건에 힘쓴 한학자 남궁복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 1970년 양주 향교 전교를 지낸 남궁복(南宮墣)[1887~1975]의 발의로 도봉 서원이 복설되어, 그 공을 기념하기 위해 남궁복 기념비를 세웠다. 남궁복의 아들인 남궁련이 당시 해운 공사 사장·극동 해운 사장·조선 공사 회장을 지내면서 도봉 서원 복원에 거액을 희사하였기 때문에 남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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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지역에 살았던 효자. 도봉구 쌍문동(雙門洞)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가운데 조선 시대의 효자 남궁지(南宮墀)와 그의 처 하동 정씨(河洞鄭氏), 그리고 그의 아들인 남궁조(南宮鋽)까지 효자문을 받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궁조는 승지공파(承旨公派) 23세손으로 자는 성립(聖立)이다.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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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지역에 살았던 효자. 도봉구 쌍문동(雙門洞)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가운데 조선 시대의 효자 남궁지(南宮墀)와 그의 처 하동 정씨(河洞鄭氏), 그리고 그의 아들인 남궁조(南宮鋽)까지 정문을 받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열 남궁씨 족보』에 따르면 남궁지는 승지공파(承旨公派) 22세손으로 자(字)는 여구(汝九)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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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지역에 살았던 효부. 도봉구 쌍문동(雙門洞)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가운데 조선 시대의 효자 남궁지(南宮墀)와 그의 처 하동정씨(河洞鄭氏), 그리고 그의 아들인 남궁조(南宮鋽)까지 정문을 받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열 남궁씨 족보』에 따르면 남궁지의 부인 정씨는 본관이 하동(河東)으로 부정(副正)을 지낸 정노성(鄭老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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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조선 시대 왕족 및 사대부의 묘. 조선 시대 무덤은 신분 또는 위계에 따라 크게 능(陵), 원(園), 묘(墓) 세 가지로 구분한다. 능은 왕[추존왕 포함]과 왕비의 무덤을 말한다. 원은 왕세자, 왕세자비, 세손,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종실로서 왕위에 오른 왕의 생가 어버이] 등의 무덤을 말한다. 묘는 나머지 왕족, 즉 왕의 정궁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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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병풍 그림. 이하응(李昰應)[1820~1898]은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이며 서화가이다. 자는 시백(詩伯), 호는 석파(石坡), 본관은 전주이다. 조선 왕조 제26대 고종(高宗)의 아버지이며, 흔히 대원군(大院君)이라 불렀고,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은 봉작명이다. 정치적 야망으로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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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실 의례 때 입는 붉은색의 예복. 조복(朝服)은 소매가 넓은 중단(中單)을 입고, 앞 3폭 뒤 4폭으로 된 상(裳)을 입은 후에 좌우 옆이 트여있는 의(衣)를 맨 위에 입는다. 백색 중단에 적색의와 적색상을 입고, 허리에 적색 폐슬과 후수(後綬), 패옥(佩玉)을 차고, 머리에는 금관을 썼으며, 손에는 홀(笏)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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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도봉산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사찰. 도봉사(道峰寺)는 고려 시대인 968년(광종 19)에 혜거 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하였으며, 971년(광종 22) 광종(光宗)이 여주 고달사와 희양산 봉암사, 양주 도봉사 세 곳을 특별 선원으로 삼았다. 현종(顯宗) 때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도봉사에 들렀던 적이 있다. 이후 도봉사는 전쟁과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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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512번지에 있는 서원으로, 서울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간 서울·경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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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의 천축사에 시주한 조선 시대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1851~1895]는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왕비이다. 1891년(고종 29)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비로자나 삼신불도를 천축사에 시주하여 명성황후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또한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책봉되기 전까지 머물렀던 감고당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서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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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6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도봉리와 창동리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일본은 한국을 강점한 후 군대와 헌병 경찰을 동원하여 항일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였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 사회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였다. 헌병 경찰은 정식 법 절차 없이 벌금, 구류 및 태형을 실시할 수 있는 즉결 처분권을 가지고 조선인들에게 전근대적인 태형을 실시하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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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서원. 도봉서원(道峯書院)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도봉서원은 300여 년 간 서울·경기 지역 선비들의 주요한 교유처가 되었으나, 고종 대에 서원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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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별장 터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비. 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풍은 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으로, 예조 판서(禮曹判書)·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거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올랐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으로 목사를 지낸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신정왕후(神貞王后)는 1819년(순조 19) 12세에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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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신정왕후의 별장 터.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401번지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라는 절은 원래 신정왕후[1808~1890], 곧 조대비(趙大妃)의 별장 터이다. 신정왕후는 순조(純祖)의 며느리이자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헌종(憲宗)을 낳았다. 1857년(철종 8) 순조(純祖)의 비인 순원 왕후(純元王后)가 죽자, 신정왕후가 대왕대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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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봉구가 관할하는 4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로 행정동인 쌍문 1동, 쌍문 2동, 쌍문 3동, 쌍문 4동을 관할하고 있다. 쌍문동의 지명에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 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86번지 자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이곳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계성과 그의 부인 사이에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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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를 관할하던 양주목사로서 선정을 베푼 지방관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주목사 선정비(楊州牧使善政碑)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노원구·중랑구·강북구 및 경기도 양주시·동두천시 등을 포괄하던 조선 시대 양주(楊州) 지역에서, 양주목사(楊州牧使)로서 선정(善政)을 베푼 관리들의 공덕(功德)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비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관(地方官)으로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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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마을은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현재의 도봉구 도봉동 일대의 안골, 서원내, 서원말을 하나로 묶은 권역을 의미한다. 2002년 문화 관광부와 전국 문화원 연합회에서 추진한 ‘문화·역사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도봉산 서원마을이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하였을 만큼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도봉산 서원마을은 조선 시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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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해평 윤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과 원종 대에 관직을 지낸 윤군정(尹君正)이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은 고려 충숙왕 때 대언(代言)이 되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탁월한 외교 수단으로 행성(行省)의 설치를 중지시켰고, 그 공으로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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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다스렸던 양주 목사. 이유인(李裕寅)은 1888년(고종 25) 파주 목사 재임 시 전무위원(電務委員)이 되어 기해 전선(畿海電線) 가설에 공을 세웠다. 1890년에 양주 목사가 되었으며, 양주 목사 재임 시절 조 대비(趙大妃)의 능묘 공사를 끝낸 공으로 경기 감사와 함께 품계가 승격되었다. 1891년 12월 한성부 판윤으로 부임하였고, 1894년 함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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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정치권력의 확보와 행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일련의 활동. 지역 정치는 특정한 공간적 지형이 확정된 이후 선거라는 기제를 통하여 권력이 배분되고 행사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도봉구의 정치는 1971년 7월 1일 도봉구가 신설된 이후 직접 선거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선거의 결과를 토대로 그 특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 1. 도봉구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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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5월부터 1896년 8월까지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이 소속된 양주군의 상위 행정 기관.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전국을 23개의 부(府)로 개편하면서 한성과 인근 10개 군(郡)을 합쳐 한성부(漢城府)로 편성하였는데, 이때 양주군도 한성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부 13도제(道制) 시행으로 경기도가 부활하면서 양주군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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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는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 대장군을 지낸 남궁원청(南宮元淸)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1970년대 남궁복(南宮墣)이 도봉 서원(道峯書院) 복설(復設)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이를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또 도봉구 경내에는 함열남궁씨 묘역 두 곳이 조성되어 있다. 함열(咸悅)은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해당하는 곳으로 백제 시대에는 감물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