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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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淑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선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90년 - 남궁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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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53년 - 남궁숙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74년 - 남궁숙 묘표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남궁숙 신도비 건립 |
현 소재지 | 남궁숙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N37° 40′ 26.9245″, E127° 01′ 09.1519″) |
성격 | 묘 |
양식 | 단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남궁숙(南宮淑)[1490~1553]|고흥 유씨(高興柳氏)|완산 이씨(完山李氏) |
소유자 | 함열 남궁씨 종중 |
관리자 | 함열 남궁씨 종중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함열 남궁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궁숙의 묘.
[위치]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지낸 남궁숙(南宮淑)[1490~1553]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번지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 제1묘역에 위치하여 있다. 북한산 국립 공원 무수골 매표소를 통과하여 서쪽 방향인 원통사 쪽으로 올라가다 만세재(萬世齋)에서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약 150m 떨어진 지점이다. 능선 가장 상단이 청풍 군수(淸風郡守) 남궁활(南宮活)의 묘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남궁숙의 어머니 평산 신씨(平山申氏)의 묘가 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남궁숙의 묘가 위치한다. 마을 어귀에는 1983년 새로 세운 남궁숙의 신도비가 있다.
[변천]
남궁숙 묘(南宮淑墓)는 16세기에 조성된 이래 원위치에 그대로 있다. 최근 봉분에 호석(護石)을 두르고 석물을 추가로 설치하여 석물 간의 배치 이동이 있는 것으로 보여 묘역은 원형을 잃고 있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인데, 정부인(貞夫人) 고흥 유씨(高興柳氏), 정부인 완산 이씨(完山李氏)와 함께 세 명을 합장하였다. 서쪽[오른쪽]에는 정부인 완산 이씨, 동쪽[왼쪽]에는 정부인 고흥 유씨를 합장하였다. 좌향은 동향이다. 묘역은 상계와 하계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상계에는 묘표와 혼유석을 배치하였고, 하계에는 석상(石床)·향로석·석망주·문석인·장명등을 배치하였다.
묘표는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개석이 둥근 원수 방부형(圓首方趺形)이다. 봉분의 동쪽으로 빗겨 세웠다. 입석 연대는 ‘만력 갑술 계추(萬曆甲戌季秋)’로 1574년(선조 7)이며 규모는 비신 67×17×175㎝, 대석 70×35×21㎝이다. 향로석은 자그마한 육각 향탁의 형태로 호족형의 발을 지녔다. 장명등은 사모 합각지붕의 개석을 갖추었고, 원수(圓首)는 높지만 연엽(蓮葉)과 합각부(合閣部)를 도식적으로 조성하였다.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 네 면에는 화창(火窓)을 내었으며, 대석에는 안상문(眼象紋)을 상하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장명등은 조형성이 투박하고 비례가 맞지 않으나, 16세기 중반의 양식을 보인다. 장명등의 규모는 개석 너비 68×66㎝이고, 총 높이 149㎝이다. 석망주(石望柱)는 하계의 좌우로 넓게 벌여 배치하였는데, 비교적 소규모이다. 총 높이 132㎝이고 운두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양각하였으며 문양을 단순화하였다.
문석인은 석망주 아래에 배치하였다.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착용하였는데, 총 높이 174㎝로 규모가 다소 작다. 둥근 얼굴형에 이목구비는 깊은 선각으로 또렷하게 조성하였고, 어깨에서 등으로 흐르는 신체 곡선이 완만하여 16세기 중반의 양식을 보이고 있다. 손과 옷 주름 등의 세부 묘사는 간략하게 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조카 남궁침(南宮枕)[1513~1567]의 묘역 상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남궁숙 묘는 석물의 위치가 이동된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남궁숙의 묘표에는 간략한 기록이 남아 있다. 비신 앞면 가운데에는 ‘정헌대부 한성 판윤 전라 황해 함경도 관찰사 병마절도사 남궁 공숙 지묘 정부인 완산 이씨 부우 정부인 고흥 유씨 부좌(正憲大夫漢城判尹全羅黃海咸鏡道 觀察使兵馬節度使南宮公淑之墓 貞夫人完山李氏附右 貞夫人高興柳氏附左)’라고 새겼다. 비신 뒷면에는 비신의 입석 연대를 새겨 간략한 묘표의 기능만 담당하고 있다.
[현황]
남궁숙 묘의 위치는 원형 그대로이다. 그러나 근래 봉분 둘레에 새롭게 방형의 호석을 둘러서 원형을 잃고 있다. 석물의 보존 상태는 특히 묘표가 좋지 않은데, 비신의 대리석 재질이 모두 벗겨지고 마모가 심하며 짙은 회색으로 변색되었다. 묘역의 조성은 16세기 중반이지만 석물 위치가 교란되어 후대에 일부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함열 남궁씨 종중이 소유하여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울특별시 도봉동 함열 남궁씨 묘역은 15세기부터 조성된 고분군(古墳郡)으로 상설 배치 및 석물의 양식이 서로 유사하다. 그중 남궁숙 묘는 어머니 정부인 평산 신씨의 묘와 함께 가장 선대에 속하는 묘소이다. 한편 남궁숙의 아버지인 남궁찬(南宮璨) 묘는 전라북도 익산군 성당면 갈산리 산70번지에 있다. 이곳에는 육합모를 쓰고 두 손을 공수한 채 다소곳이 서 있는 시자 석인(侍子石人)이 한 쌍 있는데, 높이 250㎝의 큰 규모로 16세기의 독특한 양식이다. 이러한 석물은 서울에 있는 후손의 묘소와는 다른 형식으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