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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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致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73가길 18-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선 |
현 소재지 | 남궁치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69-7(N37° 40′ 19.224″, E127° 02′ 26.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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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묘 |
양식 | 단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남궁치(南宮致)|옥천 김씨(沃川金氏) |
소유자 | 함열 남궁씨 종중 |
관리자 | 함열 남궁씨 종중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함열 남궁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궁치의 묘.
[개설]
남궁치(南宮致)는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남궁계(南宮啓)[?~1446]의 양자로 조선 초인 15세기에 활동하였던 무관이며, 박천 군수(博川郡守)를 지냈다. 함열 남궁씨 묘역에 묻힌 사람 중 가장 선조이다.
[위치]
남궁치 묘(南宮致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69-7번지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 제2묘역에 있다. 함열 남궁씨 제2묘역은 지하철 1호선 도봉역 맞은편 무수골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가면 도봉 빌라 뒤 무수골 북쪽 능선부에 있다. 묘역의 가장 상단에 근래 건립한 남궁치의 아버지 남궁계의 제단이 있고, 그 아래에 남궁치 묘가 있다.
[변천]
남궁치 묘는 15세기 이후 원래의 위치는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봉분 호석(護石)을 새로 두르고, 용미(龍尾)[무덤의 분상 뒤를 용의 꼬리처럼 만든 자리] 등을 수정하는 등 후대에 비석 및 각종 석물을 많이 추보하면서 원형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형태]
남궁치 묘는 단분 합장으로 숙부인(淑夫人) 옥천 김씨(沃川金氏)와 합장하였다. 묘역에는 묘표, 문석인 등의 옛 석물과 혼유석, 석상(石床), 향로석, 석망주, 신문석인, 장명등, 신묘 표석 등을 갖추었다. 특히 묘표는 개석이 하엽형인 15세기의 화관 방부형이다. 위치는 봉분 정면 앞에 있다. 개석·비신·대석이 모두 한 돌이고, 대석에는 복련(覆蓮)을 장식하였다.
비신 앞면에는 ‘통정대부 행박천 군수 남궁치 지묘(通政大夫行博川 郡守南宮致之墓)’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숭정 정사 중각(崇禎丁巳重刻)’이라고 새겨 1677년(숙종 3)에 원래의 묘표에 비문만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통정대부의 품계는 손자인 남궁찬이 중종반정 이후 관작을 회복할 때 추증된 것이다. 묘표의 규모는 개석 51×22×44㎝, 비신 42×18×60㎝이다. 이 외에 문석인이 있는데 원래의 15세기 석물로서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착용하였고, 총 높이 122㎝의 소략한 조형물이다.
[금석문]
15세기의 양식을 보이는 묘표가 있으나, 1677년(숙종 3)에 다시 비문을 음각한 것으로 보여 원래의 금석문을 파악하기 어렵다.
[현황]
묘의 위치는 원형 그대로이다. 그러나 근래 봉분·호석·용미 등이 변형되었고, 많은 석물이 추보되어 원형을 찾기 어렵다. 함열 남궁씨 종중이 소유하여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궁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동에 위치한 함열 남궁씨 묘역 중 가장 오래된 묘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묘의 원래 조성 시기는 15세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