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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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睦林一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대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46년 - 목림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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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716년 - 목림일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4년 - 목림일 묘갈 건립 |
현 소재지 | 목림일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N37°39'48.2221"E127°01'26.9521") |
성격 | 묘 |
양식 | 단분 합장묘 |
관련 인물 | 목림일(睦林一)[1646~1716]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목림일의 묘.
[개설]
목림일(睦林一)[1646~1716]은 본관이 사천(泗川)이고, 자는 사백(士伯), 호는 청헌(靑軒)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목내선(睦來善)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1678년 통덕랑(通德郞)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이 되었다. 지평·수찬·정언·부교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89년 남인인 아버지 목내선이 좌의정에 오르자 목림일도 이조좌랑·부응교·응교·집의·승지·대사간·도승지·대사헌 등을 지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 세력이 축출되면서 남해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인 1695년에 풀려났다. 그러나 1701년 인현 왕후가 세상을 뜨고 남인 세력이 완전히 축출될 때 다시 장흥에 유배되었다가 1704년에 풀려났다.
[위치]
목림일 묘(睦林一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번지 사천 목씨 묘역에 있다. 사천 목씨 묘역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이 위치한 능선의 동쪽 계곡부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 입구에 목서흠 신도비가 있고, 북쪽으로 50m 더 올라가면 능선 가장 위쪽에 충정공 목서흠 묘역이 있으며, 그 아래에 목진공(睦進恭)·목림일·목천현(睦天顯)의 묘가 차례로 있다.
[형태]
목림일 묘는 단분 합장묘로, 남향을 하고 있다.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문인석, 망주석 등의 원래 석물과 후대에 건립한 묘갈을 갖추고 있다. 묘갈은 팔작지붕 형태로 옥개형 4면 비이다. 크기는 49×21×132㎝이다.
[금석문]
묘갈 전면 비제(碑題)에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만오당 목공 묘갈명(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晩悟堂睦公墓碣銘)’이라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공지 몰후 이백이십구 년 갑신 춘 팔세손 욱상 수석(公之歿後二百二十九年甲申春八世孫旭相樹石)’이라 새겨져 있어 1944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목림일 묘는 사천 목씨 묘역 내에 있어 후손들에 의해 관리가 잘되고 있다. 최근에 세운 묘갈을 제외하고 다른 석물은 모두 당대에 세운 것으로, 조선 후기 묘제 석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