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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43
한자 韓致禮
이칭/별칭 자절(子節),장간(莊間)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민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41년연표보기 - 한치례 생
활동 시기/일시 1460년 - 한치례 무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499년연표보기 - 한치례 졸
묘소|단소 한치례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청주(淸州)
대표 관직 영돈령부사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절(子節). 증조할아버지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영(韓寧)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사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한확(韓確)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 한확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훗날 인수 대비(仁粹大妃)가 되었다. 큰고모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뽑혀 여비(麗妃)가 되었고, 작은 고모는 성조의 뒤를 이은 선종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한치례(韓致禮)[1441~1499]를 비롯한 한씨 집안의 권력은 막강하였다. 부인은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한치례는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훈련원 도정을 제수 받았다. 이어서 병조참지가 되어 세조가 강원도의 고성 탕정(高城湯井)에 거둥할 때 수가(隨駕)하였으며, 왕의 명령으로 입직한 군사들과 함께 백악산에 올라가 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1467년(세조 13) 첨지중추부사에 승진하였으며, 1468년(예종 즉위년) 첨지부중추사가 되었다.

1469년(성종 즉위년)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의 외숙으로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1471년(성종 2)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었다. 1473년(성종 4) 병조참판을 제수받았고, 1475년(성종 6)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품되었다. 1476년(성종 7) 12월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 사행 길에 올랐으며, 1477년(성종 8) 5월 다시 성절사(聖節使)로 파견되었다. 이 해 7월 정2품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승품되었다. 1479년(성종 10) 9월 또 북경에 성절사로 다녀왔다. 한치례의 고모가 당시 명나라 선종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사행에 후궁인 한씨를 위해 따로 준비하는 예물 문제가 조정에 큰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1480년(성종 11)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좌참찬이 되었다. 1485년(성종 16) 판중추부사를 역임하였으며, 그 뒤 호조판서·병조판서·공조판서 등을 두루 지냈다. 1494년(성종 25) 이철견(李鐵堅)의 범간 사건(犯奸事件)이 발생하였을 때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탄핵을 받았다. 1499년(연산군 5) 영돈령부사로 서릉 부원군(西陵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묘소]

양주 해촌리(海村里)[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4번지] 부인의 묘역에 봉분을 따로 마련하여 안장하였는데, 이는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한치례의 묘는 천주교 공원묘지 내 바위 글씨가 있는 계곡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정도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자리한다. 묘는 단분 합장이고, 좌향은 서남향이다. 묘표,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문인석 2쌍, 신도비 등을 갖췄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장간(莊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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