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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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啓 |
이칭/별칭 | 병사공(兵使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택 |
활동 시기/일시 | 1413년 8월 23일 - 남궁계 대호군에서 파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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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46년 1월 22일 - 남궁계 졸 |
묘소|단소 | 남궁계 단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69-7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함열(咸悅) |
대표 관직 | 중추원 부사 |
[정의]
조선 전기 도봉산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받았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열(咸悅). 아버지는 남궁우(南宮祐)이며, 부인은 구홍(具鴻)의 딸로 슬하에 1녀를 두었다. 사위는 홍길경(洪吉經)이다.
[활동 사항]
남궁계(南宮啓)[?~1446]는 조선 태종 대와 세종 대에 주로 활동했던 관리이다. 함열 남궁씨 종친회의 자료에 따르면, 남궁계는 2차 왕자의 난 당시 태종을 도운 공으로 원종공신(元從功臣)에 책봉되었고, 이때 도봉산 일대를 사패지로 받았다.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으나 『태종실록(太宗實錄)』과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 남궁계에 관한 기록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태종 대와 세종 대 대호군, 정주 목사, 의주 목사, 동지중추원사, 한성부 윤, 전라도 병마도절제사, 경주부 윤, 중추원 부사 등 중외(中外)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재임 중 여러 차례 탄핵되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예컨대 1413년(태종 13)에는 대호군으로서 순관의 직무를 소홀히 하여 파직되었고, 1426년(세종 8)에는 정주 목사로 재임하면서 부당하게 노비를 뇌물로 받은 죄로 파직되었다. 또 1430년(세종 12)에는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비굴하게 아부하였다 하여 동지총제(同知摠制)직에서 파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신임이 감안되어 처벌이 감면되곤 하였으며, 또 처벌을 받은 뒤에도 곧이어 다른 관직에 제수되어 그가 당시 왕의 신임을 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묘소]
묘는 잃어버려 전하지 않으며, 후손들이 도봉산에 단(壇)과 재실인 무수재(無愁齋)을 세워 시제를 지내고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