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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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鎭長 |
이칭/별칭 | 치구(稚久),문효(文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에 제수된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구(稚久).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인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할아버지부터 민진장까지 3대가 연이어서 과거에 장원하여 삼세 문장(三世文壯)이라 불렸다.
[활동 사항]
민진장(閔鎭長)[1649~1700]은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1세에 진사시에 급제한 뒤 지평 현감·양천 현령 등을 지냈으나, 본격적인 관직 생활은 1686년(숙종 12) 별시에서 장원을 하고 나서 그다음 해인 1687년(숙종 13) 좌부승지로 임명된 후부터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승지에 임명되기 전 민진장은 1687년 8월 2일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로부터 15일이 지난 8월 17일 양주 목사직을 하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민진장은 양주 목사에 임명은 되었으나 실제로 양주에 가서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예조참판·승정원 도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 22)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 외에도 형조판서·우참찬·대사헌·호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700년(숙종 26) 우의정에 올랐으나 같은 해 사망하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하여 사류들과 관계가 원만하였다고 한다.
[묘소]
묘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부구리 산8-4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26년(영조 2) 문효(文孝)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