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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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墍 |
이칭/별칭 | 가의(可依),송와(松窩),장정(莊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양혜원 |
[정의]
조선 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가의(可依), 호는 송와(松窩). 증조할아버지는 이장윤(李長潤)이고, 할아버지는 이질(李秩)이다. 아버지는 이지란(李之蘭)이며, 어머니는 원선(元璿)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기(李墍)[1522~1600]는 어렸을 때부터 시서에 능하여 1555년(명종 10)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장령, 수찬을 거쳐 전한(典翰)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571년(선조 4) 직제학, 1573년(선조 6) 강원도 관찰사, 1574년(선조 7) 우승지가 되었다. 1578년(선조 11) 양주 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청렴하고 간소하며 선정을 베풀어 경기 감사가 그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1583년(선조 16) 중앙으로 돌아와 부제학을 지내고 이어 장흥 부사,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여섯 번째 아들인 순화군(順和君)을 보필하여 강원도에 내려가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1596년(선조 29) 대사간, 대사헌,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다. 1597년(선조 30) 지중추부사, 대사헌, 지돈령부사, 예조판서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599년(선조 32) 다시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다. 1600년(선조 33) 지돈령부사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송와잡설(松窩雜說)』이 전한다. 『송와잡설』은 일종의 야담집으로 『대동야승(大東野乘)』에 수록되었는데, 기자 조선(箕子朝鮮) 때부터 선조 때까지의 기록을 적고 있다. 내용으로는 수령들의 탐오(貪汚)를 비판하거나 신식 병기의 편리함에 대해 소개하고, 중국과 우리의 농기구를 용도에 따라 설명하는 것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청빈한 성품으로 유명하였는데, 죽은 후인 1603년(선조 36)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 데에 녹선되었으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