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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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鳳祥 |
이칭/별칭 | 의숙(儀叔),충민(忠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혜원 |
[정의]
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무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5세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임실 현감 이회(李薈)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순릉 참봉 이지백(李之白)이며, 할아버지는 현릉 참봉 이광윤(李光胤)이다. 아버지는 상주 영장 이홍저(李弘著)이다. 이봉상(李鳳祥)[1676~1728]은 세 번 장가들었는데 수사 안적(安績)의 딸 죽산 안씨(竹山安氏), 찰방 홍일장(洪日章)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 서종의(宗誼)의 딸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그들이다. 죽산 안씨는 큰아들 이한필(李漢弼)을, 달성 서씨는 이한익(李漢翊)을 낳았다.
[활동 사항]
이봉상은 1702년(숙종 28) 무과에 급제하여 포도대장, 훈련원 도정, 삼도 수군통제사, 총융사, 한성부 우윤 등을 두루 지냈다. 1720년(숙종 46) 2월부터 8월까지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가 속해 있던 양주목의 목사가 되었는데, 어영청에서 유임을 청하였으나 감사가 어려운 고을을 살리는 데 아무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니 왕이 그 청을 옳게 여겼다. 이때 양주 목사가 갑자기 교체되므로 양주 백성들이 분주하게 호소하여 유임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1721년(경종 1) 10월 내직으로 들어와 좌포도대장, 훈련원 도정, 형조 참판, 훈련 금위대장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청주가 함락되었을 때 이봉상은 작은아버지 이홍무(李弘茂)와 함께 반란군에게 붙잡혔는데, 이인좌에게 항복을 권유받았으나 충무가(忠武家)의 충의(忠義)를 내세워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인좌의 난 당시 어사 이도겸(李道謙)이 청주에서 돌아와 그 순절을 전하자 영조가 정려를 세우고 좌찬성에 추증하였으며, 후에 헌종이 청주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제향하게 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후에 충무공을 모신 아산 현충사에도 더불어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