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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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起陽 |
이칭/별칭 | 공망(公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1동 8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기승 |
묘소|단소 | 여기양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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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내시 |
성별 | 남 |
대표 관직 | 설리(薛里)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내시.
[가계]
자는 공망(公望). 내시 집안 족보인 『양세 계보(養世系譜)』에 따르면 여기양(呂起陽)은 1680년(숙종 6)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1등에 책록된 김영(金玲)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 아들이다. 김의장(金義章)을 양자로 들였다.
[활동 사항]
여기양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남아 있지 않다. 고향은 영변(寧邊)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1694년(숙종 20)부터 1739년(영조 15)까지 여기양이 국왕의 명령이나 각종 의례에서 업무를 수행한 후 포상 받은 내역이 기록되어 있어 그의 활동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1703년(숙종 28)과 1704년(숙종 29) 내시부에서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담당하던 설리(薛里)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양세 계보』에는 정3품인 통훈대부(通訓大夫)의 관품(官品)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묘소]
『양세 계보』에 묘가 해등촌(海等村) 계성리(鷄城里)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 80번지이다. 이곳은 일명 곱산이라 불리는 곳으로 내시 종파(宗派) 가운데 백몽호(白夢虎)를 중시조로 하는 판곡파(板谷派) 문중 묘지가 있다. 원래 수십여 기의 묘가 있었으나 대부분 이장되고 현재는 3~4기의 봉분만 확인된다. 또한 무덤에 사용되었던 석물 30~40여 개가 곳곳에 흩어져 있으며, 묘표 가운데 여기양의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