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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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尙通 |
이칭/별칭 | 달경(達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혜경 |
출생 시기/일시 | 1690년 - 윤상통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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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윤상통 도봉 서원 원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76년 - 윤상통 추탈 논의가 있었으나 시행되지 않음 |
출생지 | 서울 |
부임|활동지 | 도봉 서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1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파평 |
대표 관직 | 금부도사(禁府都事) |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의 원임(院任)을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달경(達卿). 할아버지는 이조좌랑(吏曹佐郞), 대사간, 도승지, 형조참판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지낸 윤지선(尹趾善)이며, 아버지는 행사복시 주부(行司僕寺主簿)를 지낸 중훈대부(中訓大夫) 윤식(尹寔)이다. 할머니는 문부사(文府使) 홍서(洪恕)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형과 아우로 윤상원(尹尙遠)과 윤상손(尹尙遜)의 이름이 확인된다.
[활동 사항]
윤상통(尹尙通)은 1690년에 한양에서 태어났다. 1727년(영조 3) 증광시(增廣試)를 통해 진사(進士)가 되었고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역임하였다. 1737년(영조 13)에 죄인 이명언(李明彦)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을 때 윤상통이 앞장서서 가기를 청하였다가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지체한 일로 헌납(獻納) 윤득징(尹得徵)이 국문할 것을 상주하였으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김동필(金東弼)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변론하여 처벌을 받지 않았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송시열이 도봉 서원에서 출향(黜享)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윤상통은 도봉 서원의 원임(院任)으로 있었다. 후에 정조(正祖)가 즉위하자 그 당시 윤상통이 송시열의 신주(神主)를 새끼줄에 묶어 끌고 다녔다고 하여 이미 고인이 된 윤상통에 대하여 추탈(追奪)의 형벌을 내릴 것을 청하는 논의가 몇 차례 일어났다. 그러나 정조는 윤상통의 죄가 악역(惡逆)이 아닐 뿐더러 미관(微官)이라는 이유로 윤허하지 않았다. 그 밖의 자세한 행적과 몰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