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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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聲邰 |
이칭/별칭 | 직당(稷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나영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정치인.
[활동 사항]
강성태(姜聲邰)는 1903년 11월 2일에 태어났다. 1929년에 경성 제국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37년까지 조선 총독부에서 근무하였다. 1937년에 만주 척식 공사(滿洲拓植公社)에 입사하여, 1943년에 연길(延吉) 지점장이 되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재무부 관세국장에 임명되어 우리나라 관세 행정 체계 마련에 공헌하였고, 1953년 재무부 차관으로 승진되었다. 1954년부터 1955년까지 상공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1956년에는 한국 무역 협회 회장을 지냈다. 1958년 현재의 도봉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 을구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제4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공직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정리한 강성태는 보험 업계에 투신해 경제인으로도 활약하였다. 1962년에 대한 손해 보험 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63년부터 한국 자동차 보험 주식회사 사장에 부임하여 1973년까지 11년간 근속하였다. 1969년에 대한 손해 보험 협회 이사장에 다시 취임하였고, 1971년에 전국 경제인 연합회 이사직을 맡았다.
강성태는 정치계와 경제계뿐만 아니라 체육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26년에 최초로 서구식 테니스를 국내에 도입하여 보급하는 데 주력하였다. 1946년에 대한 테니스 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에 선임되어 1958년까지 회장직을 역임하였고, 1958년에 다시 대한 테니스 협회 회장에 취임하여 1963년까지 활동하였다. 1963년에 대한 테니스 협회에서 ‘강성태 배 테니스 대회’를 창설하였다.
1968년에 라이온스 클럽 309지구 총재를 역임하면서 사회봉사와 지역 사회 발전 및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에 솔선수범하였다. 1972년 직당(稷堂) 장려상을 창설하여 테니스 선수의 발굴과 육성에 주력하였으며, 1973년에는 탁구 체육관 건립 기금 100만 원을 경향 신문에 기탁해 탁구계 발전에도 이바지하였다. 1976년 11월 4일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1년 체육에 대한 공로로 정부에서 국민 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1970년 보험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70년 한국 보험 학회로부터 한국 보험 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