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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87
한자 李無影墓所
분야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908년 1월 14일 - 이무영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60년 4월 21일 - 이무영 사망
현 소재지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도봉구 방학 3동 산69-1](북위 37°39`57. 492, 동경 127°1`4.206)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이무영(李無影)[1908~1960]
봉분 크기/묘역 면적 봉분 화강암 호석[210×270×45㎝]|묘소 면적 약 100㎡[30.25평]
관리자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소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있는 현대 소설가 이무영의 묘.

[개설]

이무영(李無影)[1908~1960]은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이용구이다. 휘문 의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소설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발표한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이 등단작이다. 1929년에 귀국하여 교사와 『동아 일보』 기자 등을 지내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31년에는 ‘극예술 연구회’에, 1933년에는 ‘구인회’에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1939년 무렵 경기도 군포로 귀농하였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제일과 제일장」, 「농민」, 「흙의 노예」 등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이 때문에 한국 농민 문학 또는 농촌 소설의 선구자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 말에는 몇 편의 친일적인 작품을 쓰기도 하였고, 6·25 전쟁 때는 해군 정훈 장교로 참전하였다.

1956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하였고, 숙명 여자 대학교와 단국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4·19 혁명이 한창이던 1960년 4월 21일 52세의 젊은 나이에 뇌일혈로 타계하였다. 사후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소재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 안장되었다.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군 설성 공원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으며, 1994년 그를 추모하는 ‘무영제’가 제정되었다. 2000년부터 동아 일보사 주최로 무영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위치]

이무영 묘(李無影墓)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78-33번지[방학 3동 산69-1]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염상섭 묘와 직선거리로 약 100m 떨어진 길 위쪽에 위치해 있다. 염상섭 묘 입구를 지나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의 주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오른쪽에 권투인 고봉아의 묘가 있고 왼편에는 15×15×74㎝ 크기의 화강암에 ‘작가 이무영 선생 묘소 입구’라 씌어 있는 표지석이 서 있다. 남향의 묘 앞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화강암 둘레돌[210×270×45㎝] 위에 봉분을 하고 잔디를 입혔다. 묘 앞에 비석을 세웠는데, 장방형 기단[210×92×18㎝] 위에 가로로 길게 세 개의 화강암을 이어 붙여 비신[150×48×86㎝]을 만들었다. 묘지 주변은 전체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어 주기적으로 돌보는 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석문]

묘비의 앞면에는 가로 두 줄로 ‘농민 문학의 선구자/ 소설가 이무영 선생 묘비’라 한글로 음각하였다. 뒷면에는 명조체 세로글씨로 ‘이무영 선생을 추모하여 생시에 우정을 나누던 문우 교직 전우와 그 훈도를 받던 후배와 제자들이 이 돌을 세워 징표로 남긴다’라고 새긴 다음, 생몰 연도[1908~1960]와 유가족의 이름[부인 고안나, 아들 현, 민, 딸 자림, 성림, 미림, 상림]을 적었다.

[현황]

원래는 부부 합장을 염두에 둔 듯 다소 넓게 터를 잡고 있어 묘소의 분위기가 시원하고 밝다. 하지만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에는 더 이상의 신규 매장이 허가되지 않는 때문인지 이무영의 단독 묘로 조성되어 있다. 묘의 오른쪽 전면에 높이 10m가량의 소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이무영 묘는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 공원 관리소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인근에 유택을 마련한 소설가 염상섭과 함께 한국 근대 문학사의 중요 인물로 언급되어 오는 만큼 이들 묘소를 안내하는 이정표나 문화 지도, 설명 등을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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