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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96
한자 寧國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구본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10년 - 「영국사」 저자 김수온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81년 - 「영국사」 저자 김수온 사망
배경 지역 영국동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성격 한시
작가 김수온

[정의]

조선 전기 김수온도봉산에 있던 영국사를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영국사(寧國寺)」는 조선 전기의 문신 식우(拭疣)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당시 영국사의 분위기와 모습 등을 보고 느낀 감회를 표현한 한시이다.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기 어려우나 시의 편차로 보아 김수온의 나이 50대 후반 내지 60대 초반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573년에 남언경(南彦經)영국사 터에 도봉 서원을 건립하였는데, 이 시는 영국사가 남아 있던 시기에 창작한 작품이므로 여기에서 당시의 분위기와 불승들이 참선하는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사」김수온의 시문집 『식우집(拭疣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김수온의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 또는 식우이며, 본관은 영동(永同)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집현전 학사가 되었으며, 호조 판서 등을 지냈다. 그는 불교에 심취했던 친형과 모친의 영향으로 불가(佛家)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에 경도되지는 않았고, 유학을 기본으로 삼았다. 또한 그의 한시는 관각기(館閣氣)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으면서도 ‘한원(閑遠)’과 ‘호방(豪放)’을 미학적 특징으로 일컬을 수 있다. 저서로는 『식우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구성]

「영국사」는 전체 8구로 된 칠언 율시로, 도봉산 영국사의 주변 풍경과 당시 영국사에서 수행하던 승려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의 대비로 구성되어 있어 영국사의 풍경을 고요하게만 묘사하지 않고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내용]

간수잔원사로우(澗水潺湲瀉路隅)[골짜기 물은 졸졸졸 길가로 흐르는데]

행인지점시승구(行人指點是僧區)[행인이 가리키나니 스님들 머무는 곳이라네]

피진객도욕추모(披蓁客到欲秋暮)[수풀 헤치고 객이 이르니 가을은 저물려 하고]

면벽선부사일포(面壁禪趺斜日晡)[면벽 수행하던 선사에 햇살이 비끼네]

취석반천고가앙(翠石半天高可仰)[푸른 바위 반쯤 솟아 우러를 만하고]

대강연해원감우(大江連海遠堪盱)[큰 강은 바다로 이어져 아득히 보이네]

삼생사묘무인식(三生事杳無人識)[삼생의 일 아득하여 아는 이 없으니]

불전중영상기무(佛殿重營尙記無)[불전을 다시 짓는다 해도 오히려 기억할 수 있을까]

[특징]

제1구의 ‘우(隅)’, 제2구의 ‘구(區)’, 제4구의 ‘포(晡)’, 제6구의 ‘우(盱)’, 제8구의 ‘무(無)’를 운자로 썼다. 측기식(仄起式)으로서 평성 우운(虞韻)으로 압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국사는 고려 시대부터 도봉 서원의 자리에 존재했던 사찰이다. 1573년에 남언경이 허물어진 영국사를 대신하여 도봉 서원을 건립하였다. 김수온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영국사가 있었으므로 「영국사」에서는 당시 사찰의 모습과 절의 주변에서 수행하던 불승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작자 김수온의 사후에 곧 영국사가 없어지고 도봉 서원이 들어섰는데, 김수온이 유불(儒彿)에 모두 능통했던 점을 떠올리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감회를 새롭게 하는 시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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