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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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峰山- |
이칭/별칭 | 「입도봉(入道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정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51년 - 「도봉산에 들어서며」 저자 김창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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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97년 - 「도봉산에 들어서며」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08년 - 「도봉산에 들어서며」 저자 김창협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09년 - 「도봉산에 들어서며」가 수록된 『농암집(農巖集)』 간행 |
배경 지역 | 도봉산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성격 | 한시|오언 율시 |
작가 | 김창협(金昌協)[1651~1708] |
[정의]
1697년 봄 농암 김창협이 도봉 서원을 방문하는 길에 도봉산의 풍광을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개설]
『농암집(農巖集)』 「연보」에 따르면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은 47세가 되던 해인 1697년(숙종 23)에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와 부제학을 사직하고 한강의 미음(渼陰)으로 돌아와, 그해 윤3월에는 여러 문생들과 도봉 서원(道峯書院)을 다녀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창협은 1682년(숙종 8)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고 가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도봉 서원에서 도봉산을 바라본 감회를 「도봉산에 들어서며」에서 표현하였다.
[구성]
「도봉산에 들어서며」는 8구의 오언 율시이다. 1구와 2구는 봄이 되어 복사꽃이 만발한 도봉산 입구를 들어서는 것이 마치 무릉도원에 들어서는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3구와 4구에서는 변함없는 시냇물과 산길을 묘사하고 있다. 5구와 6구는 음력 3월의 따뜻한 봄날 저녁을, 7구와 8구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도봉산의 한결 새로워 보이는 모습을 읊고 있다.
[내용]
桃花三萬樹(도화삼만수)[삼만 그루 복사꽃 만발한 꽃길]
似入武陵行(사입무능항)[무릉도원 들어가는 기분이로세]
流水何時有(유수하시유)[시냇물은 언제부터 흘러내렸나]
荒塗自古橫(황도자고횡)[거친 길 예로부터 뻗어 있었지]
日斜羸馬緩(일사리마완)[해 기울자 야윈 말 걸음 늦어도]
風暖裌衣輕(풍난겹의경)[따순 바람 겹옷이 한결 가벼워]
十六年前面(십육년전면)[십육 년 전 본 산을 다시 대하니]
蒼峯刮眼明(창봉괄안명)[푸르른 산봉우리 한결 새롭다]
[특징]
운자는 ‘경(庚)’운의 ‘행(行)’[2구], ‘횡(橫)’[4구], ‘경(輕)’[6구], ‘명(明)’[8구]이다.
[의의와 평가]
김창협은 1682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으나, 1689년(숙종 15) 부친인 김수항이 사사되고 바로 이어 스승인 송시열(宋時烈)마저 사사되자 영평의 농암, 양주의 석실 서원 등에 머물며 강학에 힘썼다. 1694년(숙종 20) 이후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대부분 사직하고 농암과 미음 등지를 오가며 지냈다. 「도봉산에 들어서며」는 1697년 동지경연사, 부제학 등의 제수를 사직하고 고향인 미음으로 내려와 있다가 여러 문생들과 함께 오랫동안 찾아오지 못하였던 도봉 서원을 방문하여 그 감회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