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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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峯溪流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은순 |
작가 생년 시기/일시 | 1710년 - 「도봉계류도」 저자 이인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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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몰년 시기/일시 | 1760년 - 「도봉계류도」 저자 이인상 사망 |
성격 | 산수화 |
작가 | 이인상 |
재질 | 지본담채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 이인상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그린 진경 산수화.
[개설]
「도봉계류도(道峯 溪流圖)」는 조선 후기의 화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이 지난 날 절친한 벗 이윤영(李胤永)[1714~1759]과 도봉산(道峰山)에 있던 민문흔(閔文欣)의 거처를 방문하고 진경을 그렸던 것을 회고하는 내용의 화제(畵題)를 특유의 서체로 기록한 작품이다.
이인상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선비화가로 본관은 전주,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 보산자(寶山子)이다. 명문가의 서출로 1735년 진사에 급제하고 북부참봉, 음죽현감을 역임하였다. 시서화를 잘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리었고 인장(印章)도 잘 새겼다. 그는 관념산수화 뿐 아니라 진경산수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조선시대 그림 가운데 가장 맑고 깨끗한 화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강렬한 개성을 발휘하면서 격조높은 선비회화의 세계를 형성하였다.
[형태]
「도봉계류도」는 부채 형태의 그림으로 크기는 20.5㎝×47.6㎝이고, 종이에 담채를 사용하였다. 그림 옆에는 이 그림의 유래를 설명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일부가 결실된 상태이다.
[내용]
「도봉계류도」의 배경이 된 정확한 장소를 알 수는 없지만 그림에 실린 기록을 참고해 볼 때에 도봉산의 어느 암벽과 계류를 부채 위에 그렸다. 화면 중앙에 기이한 형태의 바위를 포치하였고, 바위 사이를 비집고 자란 소나무와 잡목들을 첨가하여 안정된 화면을 구성하였다. 각진 바위와 나무들을 묘사한 깔끔한 선묘, 갈필의 구사 및 담묵의 표현이 이인상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봉산 속 골짜기의 경관을 그린 이 부채 그림에는 이인상 특유의 서체로 적힌 기록이 있다. 현재 일부가 결실되어 전문(全文)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서 작품의 제작 배경을 알 수 있다.
글의 내용은 “윤지[이윤영]의 뜻이 매우 좋다. 그래서 붓을 들고 그 위에 쓰기를,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동을 보면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를 강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글을 썼었는데, 지금까지 그 부채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다시 도봉산을 유람하니 삶과 죽음의 비애를 이기지 못하겠다. 짐짓 이 말을 기록하여 함께 유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그 느낌을 붙여서 서로 권면하고자 한다.”이다.
현재 박락되어 뜻이 연결되지 않는 앞부분을 덧붙이면 전후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이인상이 절친한 벗 이윤영과 함께 도봉산 계곡가에 있는 민문흔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민문흔이 부채 위에 그림과 글을 요구하자 그려준 적이 있었던 듯하다. 이 작품은 아마도 민문흔이 죽은 이후에 다시 도봉산을 방문하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다시 찾은 도봉산의 진경을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특징]
「도봉계류도」는 그림 위에 기록된 제발이 있어서 도봉산을 유람하고 그린 진경산수화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면에 그려진 장면은 산속의 깎아지른 절벽이 화면을 가득 차지하고 그 아래로 빠르게 돌아 흐르는 시냇물이 나타나며, 물 건너편 쪽으로 다시 작은 암벽이 그려졌을 뿐, 어느 특정한 공간이나 대상을 상정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러한 표현은 이인상이 진경을 그리면서도 대상을 어느 정도 관념화한 것을 시사한다. 즉 시공을 초월하고 현실을 넘어서는 사의성(寫意性)을 추구한 것으로 보이며, 바로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관념과 사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인상 특유의 회화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간결한 구성과 갈필, 부드러운 담묵의 구사 등 이인상 특유의 개성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도봉계류도」는 진경을 재현하였으면서도 이인상의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사의적인 진경 산수화는 특히 선비 화가를 중심으로 18세기 중엽 이후에 유행하였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이인상이 이러한 경향을 선도한 화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유행한 선비들의 유람 풍류와 시서화 삼절의 애호를 보여주는 작품이며, 특히 도봉산이 조선 후기의 여러 문인들이 즐겨 유람한 장소인 것을 시사하는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