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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029
한자 平野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승호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넓은 벌판.

[개설]

평야는 평지의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낮고 평평한 넓은 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기복이 거의 없는 넓은 토지인 셈이다. 평야는 형성 원인에 따라 충적 평야와 침식 평야로 나뉘는데, 충적 평야는 대하천의 중하류에서 하천의 퇴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침식 평야는 오랜 기간에 걸친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륙에 형성되어 있는 평야는 대체로 침식 평야의 성격을 지닌다. 대하천의 하류에 형성된 일부 평야는 충적 평야의 성격을 지닌다. 침식 평야가 형성된 곳은 넓은 농경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인구 부양력이 높아서 오래전부터 인간의 주거지로 이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주요 전통 도시 역시 대부분 하천변의 침식 평야를 기반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

[평야의 형성]

도봉구 일대는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천의 침식 작용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도봉산에는 화강암의 침식에 의한 침식곡이 발달해 있다. 한편 도봉구 시가지는 도봉산의 말단부에서부터 중랑천 변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구릉이나 평지에 건설되었다. 주변의 산지와 내부의 평야가 침식 분지를 형성하는데 현재 도봉구의 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는 곳 가운데 일부 지역은 과거에 농경지로 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랑천이나 우이천 변에 충적층에 의한 충적 평야가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었다. 현재의 도봉구를 묘사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 의정부 도엽을 살펴보면, 중랑천 변 서쪽[당시에는 도봉리]과 동쪽[당시에는 상계리]이 논과 밭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논으로 표시된 부분이 소규모의 평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도봉구에는 평야보다 규모가 작은 ‘들’이 아주 많았다. 방학동의 방학굴[자연 마을] 앞에 금성윗들, 도당말[자연 마을] 앞에 생잇들과 금잇들, 샛방굴[자연 마을] 앞에 장폿들, 봇들, 종잣들이 있었다. 창동에는 물이 적어 가뭄이 들면 하늘만 바라보았다는 바라기들을 비롯하여, 배라깃들, 종자들 등이 있었다.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 경계 부근에 모랫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벌판에 모래가 많았던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현황]

도봉구의 평야는 서울특별시의 도시 개발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이후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현재 도봉구 일대에서는 농경지를 찾아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밭으로 이용되는 토지는 일부 있지만, 논으로 이용되는 평야 또는 평야처럼 생긴 농경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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