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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51
한자 良孝公安孟聃神道碑
이칭/별칭 안맹담 신도비,양효 안공 신도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종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15년 - 안맹담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62년 - 안맹담 사망
건립 시기/일시 1466년연표보기 -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11월 13일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0호 지정
현 소재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1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양식 귀부 이수형
관련 인물 안맹담(安孟聃)|정인지(鄭麟趾)|안빈세(安貧世)
재질 화강석[귀부]|대리석[이수]
높이 190㎝[귀부]|190㎝[비신]
너비 170㎝[귀부]|90㎝[비신]
두께 280㎝[귀부]|26㎝[비신]
소유자 안민영 외 17명
관리자 안민영 외 17명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안맹담의 신도비.

[개설]

안맹담(安孟聃)[1415~1462]의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자는 덕수(德壽)이며 시호는 양효(良孝)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명문 출신으로, 1428년(세종 10) 세종의 둘째 딸 정의 공주(貞懿公主)와 혼인, 부마가 되어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지고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432년(세종 14)에는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고, 1442년(세종 24)에 숭록대부(崇祿大夫), 1444년(세종 26)에 관제 개편으로 광덕대부(光德大夫)가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종실과 구별하기 위하여 각 부마를 위(尉)라 개칭하기로 하였으므로 이후 연창위(延昌尉)라 불리었다.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 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평소 초서에 능하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였으며, 음률과 약물(藥物)에도 해박하였다. 불교에도 관심이 컸다 한다. 1462년(세조 8)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건립 경위]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는 1466년(세조 12) 후손들이 안맹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위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방학 사거리에서 우이 계곡 방면으로 방학로를 경유하여 가다가 고갯길이 나오기 직전 도로 우측에 죽산 안씨 묘역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중 동쪽 묘역에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이 위치해 있다.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 입구에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양효공 안맹담 신도비는 귀부 이수형의 일면 비이다. 귀부는 화강암으로 높이 190㎝, 너비 170㎝, 두께 280㎝,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90㎝, 너비 90㎝, 두께 26㎝이다.

[금석문]

비문은 안맹담의 사돈인 하동 부원군(河東府院君) 정인지(鄭麟趾)가 지었으며, 글씨와 전액(篆額)은 안맹담의 넷째 아들 안빈세(安貧世)가 썼다. 비제는 ‘유명 조선국 부마 수록대부 □창위 시양효공 □□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駙馬綏祿大夫□昌尉諡良孝公□□神道碑銘幷序)’라 되어 있다. 안맹담의 가계와 행적을 약술한 후 공덕을 칭송하였다. 비문은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도 수록되었다.

[현황]

현재 소유 및 관리는 죽산 안씨 문중의 안민영 외 17명이 담당하고 있다. 1982년 11월 13일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것 중 최초의 귀부 이수형 신도비이다. 약간의 파손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조각과 글씨가 잘 남아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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