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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태후 홍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53
한자 明德太后洪氏
이칭/별칭 덕비(德妃),공원(恭元),영릉(令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향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98년연표보기 - 명덕태후 홍씨 생
혼인 시기/일시 1313년 - 명덕태후 홍씨 충숙왕과 혼인
활동 시기/일시 1313년 - 명덕태후 홍씨 덕비로 책봉
몰년 시기/일시 1380년연표보기 - 명덕태후 홍씨 졸
추모 시기/일시 1380년 - 명덕태후 홍씨 공원(恭元) 시호 받음
성격 왕비
성별
본관 남양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던 고려 후기의 후비(后妃).

[개설]

명덕태후 홍씨(明德太后洪氏)는 고려 제27대 충숙왕(忠肅王)의 후비로서 제28대 충혜왕(忠惠王)과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을 낳았으며, 충혜왕이 즉위한 직후부터 충숙왕 때인 1336년까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해당하는 지역인 견주(見州)에 거주하였다.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할아버지는 간의대부(諫議大夫)·중서사인(中書舍人)·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지낸 홍진(洪縉)이며, 아버지는 판삼사사(判三司事)·첨의정승(僉議政丞)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진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규(洪奎)이다. 홍규는 처음 임연(林衍)의 딸을 배필로 맞이하였으나, 원종 조의 왕정복고로 임연이 몰락한 이후 김련(金鍊)의 딸인 광주군대부인(光州郡大夫人) 김씨(金氏)와 혼인하여 아들 홍융(洪戎)과 다섯 딸을 낳았다.

명덕태후 홍씨(明德太后洪氏)는 다섯 딸 중 막내로 충숙왕의 비가 되었다. 태후의 맏언니는 원나라 아고알(阿高歹)에게, 둘째 언니는 도첨의 찬성사(都僉議贊成事) 정해(鄭瑎)에게 시집갔으며, 셋째 언니는 제26대 충선왕의 후비가 되어 순화원비(順和院妃)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넷째 언니는 밀직부사(密直副使) 원충(元忠)의 부인이 되었다. 남자 형제인 홍융은 밀직(密直) 나유(羅裕)의 딸에게 장가들어 홍주(洪澍)·홍언박(洪彦博)·홍언유(洪彦猷)를 낳았고, 만호(萬戶) 황원길(黃元吉)의 딸을 계실(繼室)로 삼아 다시 두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명덕태후 홍씨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단정하였으며, 1313년 충숙왕이 왕위에 오르자 간택되어 덕비(德妃)로 책봉되었다. 행동거지가 일체의 예법을 지켰으므로 왕이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한다. 명덕태후 홍씨는 1316년(충숙왕 3) 충숙왕이 원나라의 복국 장공주(濮國長公主)를 후비로 맞아들이자 공주의 투기를 피하여 잠시 궁 밖에 거처하였다. 1315년 첫 번째 왕자인 왕정(王禎)[충혜왕]을, 1330년에 두 번째 왕자인 왕전(王顓)[공민왕]을 출산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2월에는 아들 왕정이 원나라로부터 고려 국왕에 책봉되어 제28대 충혜왕으로 즉위하였는데, 당시 충숙왕은 정만길(鄭萬吉)·강융(姜融)·김원상(金元祥)의 참소를 믿고 명덕태후 홍씨를 강제로 전리(田里)[고향 마을]에 돌려보내 모자(母子)의 상면(相面)을 막았다. 이때 명덕태후 홍씨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인 견주(見州)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를 살펴보면, 충혜왕 즉위년인 1330년 9월과 12월 충혜왕견주에 행차하여 덕비, 즉 명덕태후 홍씨를 알현하였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고, 충숙왕 후5년인 1336년 1월 갑자일 기사에서는 명덕태후 홍씨가 비로소 궁으로 소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명덕태후 홍씨가 거주하였던 전리가 바로 견주였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후 명덕태후 홍씨는 대비(大妃)로서 충혜왕공민왕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였으며, 1374년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다시 그의 곁에서 국정을 도왔다.

[묘소]

묘는 영릉(令陵)이나 자세한 위치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명덕태후 홍씨가 죽은 다음 달인 1380년(우왕 6) 2월, 우왕공원(恭元)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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