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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524
한자 魚有鳳
이칭/별칭 순서(舜瑞),기원(杞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2년연표보기 - 어유봉 생
활동 시기/일시 1699년 - 어유봉 증광 진사시 장원
몰년 시기/일시 1744년 10월 29일연표보기 - 어유봉 졸
출생지 어유봉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 3가동
거주|이주지 어유봉 낙향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구암리 모랫말[沙村]
수학지 어유봉 수학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성격 문신|유학자
성별
본관 함종(咸從)
대표 관직 동부승지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유학자.

[가계]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증조할아버지는 어한명(魚漢明)이고,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진익(魚震翼)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경종의 장인인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구(魚有龜)가 형이다.

[활동 사항]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던 대표적인 낙론계 학자이자 문신이다. 1692년(숙종 18)인 21세에 당대 서울 학문을 주도하던 안동 김씨(安東金氏) ‘6창(昌)’ 가운데 하나인 김창협(金昌協)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어 수학하였고, 이듬해에는 백운사(白雲寺)에서 김창협의 지도 아래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읽었다. 1696년(숙종 22)에는 석실 서원(石室書院), 1697년(숙종 23)에는 도봉 서원을 유람하였다.

1699년(숙종 25) 증광 진사시에 응과하여 장원을 하였지만 그 이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1706년(숙종 32) 김창집(金昌集)이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여 의금부 도사를 지냈으나 금방 체차되었고, 1707년(숙종 33) 9월에는 다시 김창협과 함께 도봉 서원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그 이후 천안 군수·부평 부사·사헌부 장령·집의 등에 제수되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인물성동이론에 참여하고 관련한 논변을 짓는 데에 몰두하였다.

1719년(숙종 45) 이후에는 1734년(영조 10) 8개월간 호조참의로 재직한 동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양주 사촌(沙村)에서 보내면서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는 모습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719년에는 장령에 제수되었지만 양주에 있으면서 사직 상소를 올리며 올라오지 않았고, 1720년(경종 즉위년) 8월에는 양주 목사에 제수되었지만 신병을 이유로 양주에서 사직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1730년(영조 6) 3월에는 집의에 제수되었지만 역시 양주에 거하면서 올라오지 않아 결국 5월에 체차되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부를 때마다 양주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그가 오랜 시간 양주 사촌에 머무르며 강학 활동을 하거나 저술에 몰두하였음을 알 수 있다. 1738년(영조 14) 3월에는 도봉산을 유람하였다. 양주 사촌에서 졸하였다.

[학문과 저술]

당대 낙론 계열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며, 권상하(權尙夏)의 제자인 이간(李柬)과 함께 인물성동론을 지지하였다. 이천보(李天輔), 홍상한(洪象漢), 윤득관(尹得觀) 등이 제자이다. 저서로 문집인 『기원집(杞園集)』과 『경설어록(經說語錄)』이 있고, 그 밖에 『오자수언(五子粹言)』·『논어상설(論語詳說)』·『주자어류요략(朱子語類要略)』·『대월첩(大越帖)』·『풍아규송(風雅閨誦)』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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