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47
한자 鄭士龍
이칭/별칭 운경(雲卿),호음(湖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7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양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91년연표보기 - 정사룡 생
활동 시기/일시 1512년 - 정사룡 별시 문과 장원
활동 시기/일시 1516년 - 정사룡 문과 중시 장원
활동 시기/일시 1534년(중종 29) - 정사룡 동지사로 명나라에 사행 다녀옴
몰년 시기/일시 1570년연표보기 - 정사룡 졸
출생지 정사룡 출생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묘소|단소 정사룡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동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東萊)
대표 관직 공조 판서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출토된 연산군 부인 신씨 지석(燕山君夫人愼氏誌石)의 찬자인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증조할아버지는 진주 목사 정사(鄭賜)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이며, 아버지는 부사 정광보(鄭光輔)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한 경기도 양주군 출신이다.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14년(중종 9) 사가독서(賜暇讀書)[조선 시대에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재능 있는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하였다. 1516년(중종 11) 문과 중시에 장원하고 사간, 부제학을 역임한 후 1534년(중종 29)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사행을 다녀왔다. 이후 예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정사룡은 말이 치밀하고 특히 칠언 율시(七言律詩)의 한시에 뛰어나 당대에 크게 평가받았다. 중종 때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의 오희맹(吳希孟)은 “흐르는 물과 우뚝 솟은 산, 동식물에 대해 변태 토납(變態吐納)한 음률(音律)과 요속(謠俗)이 한결같이 음아(吟哦)에 부치었으되 풍(風)에 뛰어나서, 시의 풍격이 온후 화평(溫厚和平)하고 기괴(奇怪)하면서도 엉뚱하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시문뿐 아니라 음률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호음잡고(湖陰雜稿)』와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쓴 『조천록(朝天錄)』이 있으며, 글씨로는 광주(廣州)에 있는 이둔촌집비(李遁村集碑)가 전한다. 아울러 그가 지은 문장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77번지에서 출토된 연산군 부인 신씨 지석(燕山君夫人愼氏誌石)이 있어 그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연산군 부인 신씨 지석(燕山君夫人愼氏誌石)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의 호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동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7.02 [활동 사항] 수정 <변경 전> 정사룡(鄭士龍)[1494~1573]은 <변경 후>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