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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78
한자 李弼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514년연표보기 - 이필간 졸
추모 시기/일시 1892년 - 이필간 묘비 건립
거주|이주지 한양(漢陽)
거주|이주지 소용동(所用洞)
묘소|단소 각심사(恪心寺)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노원구 월계동 766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예안
대표 관직 행충무위부사직(行忠武衛副司直)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예안(禮安)으로, 예안 이씨(禮安李氏) 안동파(安東派)의 파조(派祖)이다. 할아버지는 세종(世宗)조에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낸 이온(李韞)이며,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이신(李愼)이다. 어머니는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조안도(趙安道)의 딸 양주 조씨(楊州趙氏)로서 정경부인(貞敬夫人)에 배위(配位)되었다. 형 이보간(李輔幹)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追贈)되었으며, 아우 이석간(李碩幹)은 사직(司直)을 지냈다.

부인 은풍 신씨(殷豐申氏)와의 사이에서 이영(李英)[1482~?], 이전(李荃)[1486~1529], 이훈(李薰), 이영(李苓) 네 아들을 두었다. 맏아들 이영은 1507년(중종 2)에 생원 진사사에 급제하여 당시의 명유들과 교유하였으며, 둘째 아들 이전은 자는 무선(茂先), 호는 근재(近齋)로서 일찍이 출세의 뜻을 버리고 성리학에 매진하였고 도봉 서원에 배향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경학에 밝고 행실이 바르다고 하여 1526년(중종 21)에 서부 참봉(參奉)으로 임용되기도 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셋째 아들 이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넷째 아들 이영은 감찰(監察)을 지냈다.

이영(李英) 이하 세 아들은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아버지 이필간(李弼幹)의 신위를 모시고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하여 사당에 모시고 예안 이씨 파조로 추앙하였다.

[활동 사항]

이필간의 출생 시기나 수학 내력, 역임한 관직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안동 향교지(安東鄕校誌)』 선천(選薦) 음사조(蔭仕條)에 의하면 음보(蔭補)로 인해 어모장군 행충무위부사직(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直)을 지냈으며 1514년(중종 9)에 한양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묘갈에도 역시 ‘어모장군 행충무위부사직 예안 이공지묘(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直禮安李公之墓)’라고 되어 있어 그가 마지막으로 거친 관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묘소]

이필간은 부인 은풍 신씨와 함께 각심사(恪心寺)에 합장되었다. 각심사는 옛날에 단(壇)을 설치한 곳 동남쪽에 각심사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각심사는 예안 이씨 택기지(宅基地)로서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과 노원구 월계동에 걸친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남단을 이루고 있는 초안산 예안 이씨 묘역에 속한다. 이필간을 비롯한 세 형제와 어머니인 정경부인 조씨, 조카인 좌의정(左議政) 정간공(貞簡公) 이명(李蓂)의 묘소가 있으며, 그밖에 실전(失傳)된 대장군 이언승(李彦昇) 이하 6세(六世)의 조영(祖靈)을 모신 추원단(追遠壇)이 있다.

이필간의 묘소에는 1892년에 건립된 묘비와 문인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높이 122㎝의 문인석은 복두공복형으로 두부가 유난히 크며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다. 묘비에는 ‘어모장군 행충무위부사직 예안 이공지묘 배 숙인 은풍 신씨 부(禦侮將軍行忠武衛副司直禮安李公之墓 配淑人殷豐申氏 祔)’라고 쓰여 있다. 묘비명은 이용구가 짓고, 이행직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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