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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89
한자 志謙
이칭/별칭 정각 국사(靜覺國師),양지,전학돈(田學敦)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우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145년연표보기 - 지겸 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155년 - 지겸 출가
출가|서품 시기/일시 1156년 - 지겸 구족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171년 - 지겸 승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229년 7월 8일연표보기 - 지겸 졸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왕사

[정의]

도봉사에서 꿈에 산신을 만나 이름을 받은 고려 시대의 승려.

[개설]

지겸(志謙)[1145~1229]의 속성은 전씨(田氏)로, 영광군(靈光郡)의 개국 공신(開國功臣)인 운기 장군(雲騎將軍) 전종회(田宗會)의 후손이다. 광종(光宗) 대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추밀원사(樞密院使)에 오른 전공지(田拱之)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검교 태자 첨사(檢校太子詹事) 전개(田漑)이고, 할아버지는 대창서령(大倉署令) 전덕보(田德普)이며, 아버지는 검교 태자 첨사 전의(田毅)이다. 어머니는 양온령(良醞令) 남궁영(南宮榮)의 딸이다.

[활동 사항]

지겸의 원래 이름은 전학돈(田學敦)이었는데, 도봉사(道峯寺)에서 잠을 잘 때 산신(山神)이 나타나 지겸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지겸은 11세에 선사(禪師) 사충(嗣忠)에게 출가하였고, 이듬해에 금산사(金山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171년(명종 1) 승과(僧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1193년(명종 23)에는 삼중대사(三重大師)에 임명되었고, 1196년(명종 26)에는 선사(禪師)로 승진되었으며, 1204년(신종 7)에는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당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중앙과 지방의 선회(禪會)에서 그를 초빙하는 일이 많았다.

1208년(희종 4)에는 궁중의 내도량((內道場)에서 기우제를 설행하였다. 1211년(희종 7)에는 국청사((國淸寺)[경기도 개성시 소재]로 옮겼고, 강종(康宗)이 즉위한 뒤에 최충헌에 의해 국사(國師)로 추천되었다. 이후 광명사(廣明寺)[경기도 개성시 만월동 소재]에 머물렀다. 당시 최충헌은 자신의 아들을 삭발시켜 문인으로 보낼 만큼 지겸을 존숭하였다. 이후 은퇴하여 화장사(花藏寺)[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대원리 소재]에서 머물렀고, 1229년(고종 16)에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절 서쪽 언덕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등선산(登禪山) 기슭에 장사했다. 당시 지겸의 묘비는 이규보(李奎報)가 비문을 찬술하여 화장사(花藏寺)에 세웠다.

[사상과 저술]

지겸의 저술로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이 알려져 있다.

[상훈과 추모]

지겸은 사후에 정각 국사(靜覺國師)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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