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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090
한자 儒敎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인섭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공자 사상 관련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개설]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 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는 종교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초월적 믿음의 대상이나 내세관, 종교적 의식이나 교단 조직 등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기능이나 역할 등이 종교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교육이나 정치의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정교(政敎)의 지배 이념으로 등장하게 되며, 고려 시대에는 정치의 실천적 지도 이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국교(國敎)로서 그 위치와 역할이 더욱 확고해진다.

[변천]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경우 언제 유교가 들어왔고, 어떻게 계승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인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은 처음 백제의 땅이었고, 이후에는 고구려 매성군이었으며, 다시 백제를 거쳐 신라의 내소군이 되었다. 백제에서는 285년(고이왕 52) 박사 왕인(王仁)이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하고 375년(근초고왕 30) 박사 고흥(高興)이 역사서인 『서기』를 지은바 있어 유학이 일찍부터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년)에 태학(太學)을 세워 자제를 교육하였고, 또한 지방 곳곳에 경당을 두어 청년들에게 유교 경전(經典)과 궁술(弓術)을 연마시켰다는 기록을 통해 옛 도봉구 지역에도 삼국 시대부터 유학 사상이 보급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전통 시대에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었다. 양주군에는 조선 개국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401년(태종 1) 양주 향교가 설립되었으며, 1573년(선조 6)에는 도봉 서원이 설립되어 조광조(趙光祖)의 위패를 봉안하고, 1696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였다. 도봉 서원은 도성에서 가까워 많은 학사와 문인, 관리들이 출입했으며, 특히 서인, 노론계 중심의 서원으로서 그 위세가 매우 컸다. 1775년(영조 51) 어필사액(御筆賜額)을 다시 받았다. 그러나 1871년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철폐로 헐렸고, 1903년부터 지역 유림들이 향사를 봉행해오다가 1972년 복원되었다.

처음 도봉 서원 설립을 발의한 사람은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었고 부제학이었던 허엽(許曄)·좌참찬 백인걸(白仁傑)·이조 참판 박소립(朴素立)조광조의 문인들이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후 송시열·김상헌(金尙憲)·이단상(李端相)·권상하(權尙夏)·윤봉구(尹鳳九)·김수항(金壽恒)·김창협(金昌協)·박세채(朴世采) 등 서인 사류들이 자주 찾았다. 노론과 소론이 정치적으로 대립하자 도봉 서원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송시열도봉 서원 향사를 둘러싼 논쟁과 윤증의 이름을 청금록에서 삭제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송시열은 1696년(숙종 22) 도봉 서원조광조와 나란히 배향되었지만, 1723년 출향되었다가, 1725년 재배향 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현황]

서울특별시 도봉구에는 서울의 유일한 서원인 도봉 서원성균관 유도회 도봉구 지부가 유교의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서원은 도봉 서원이 유일하기 때문에 서울의 단 하나뿐인 전통 교육 기관으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도봉 서원은 2011년도 복원사업 추진중 금강령, 금강저 등 유물들이 출토되어 3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도봉 서원의 복원 및 활용방안 마련을 위해 2019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도봉 서원 터 종합정비계획 용역을 추진하였다. 현재 복원을 위한 전문가 자문 및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기 위해 도봉서원 복원안에 대한 상정을 추진 중이다.

[관련 유적]

서울특별시 도봉구에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도봉 서원과 각석군(道峰書院과 刻石群)[서울시 기념물 제28호] 유적이 있다. 도봉 서원 인근의 계곡 바위에는 우암 선생의 친필을 새긴 ‘도봉 동문(道峯洞門)’과 역시 주자의 시를 우암 선생이 대자로 써서 새긴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이란 암각문을 비롯하여, 김수항, 권상하, 이재 등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여러 암각문 들이 계곡 주변에 남아 있다. 유명한 유학자들의 글씨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글씨가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서예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게 이용된다. 또 이들을 둘러싼 도봉산 계곡과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며, 2009월 10월 22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세계 유교 문화 재단(http://www.worldcf.co.kr/)
  • 한국 지역 진흥 재단(http://www.oneclic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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