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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172
한자 映畵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무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8년 - 문예봉 월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1년 10월 25일 - 서울 연산군 묘 사적 제362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5년 - 「왕의 남자」 개봉
거주지 문예봉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0-12지도보기
행사 장소 도봉 구민 회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 552[창동 303]지도보기
관련 단체 청.진.영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718-6지도보기
관련 단체 한국 다문화 영상 예술 연합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280-2지도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카메라를 이용하여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개설]

한국 영화계는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자유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가 제작되어 각 지역의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며, 도봉구에서도 그러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겪었던 한국 영화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체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 매체, 특히 텔레비전이 등장한 영향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의 유입과 관련된 정책의 오류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규제를 위주로 한 영화법과 심한 검열 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계몽적인 영화에서 벗어나 사회의 발전 양상에 따라 다양한 사회 모순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에는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영향을 미쳤고 비디오 시장이 급성장하였으며 케이블 방송 및 각종 뉴 미디어가 발전함에 따라, 예술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부가 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이 영상 산업의 개념에서 크게 대두되었다. 2000년대 이후 현대의 한국 영화는 한국 경제의 발달과 걸맞게 급속한 발전과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한국 영화는 점차 세계 시장에 뛰어들 정도의 힘을 길렀고, 다양한 영화제에서의 수상을 기반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높아졌다.

[현황]

1. 월북 배우 문예봉

영화배우 문예봉은 1937년 무렵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0-12번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예봉은 한국 영화 초창기인 1930년대 인기 여배우로 활동하다가 월북해 북한 영화계를 움직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며 북한 최초의 공훈 배우였다.

문예봉은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주인공인 뱃사공[나운규 분]의 딸 배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인기 배우로 발돋움하였다. 최초의 발성 영화인 이규환의 「춘향전」[1935]과 홍개명의 「아리랑 고개」[1936]·「장화홍련전」[1937], 나운규의 「나그네」[1937], 안종화의 「인생 항로」[1937], 김유영의 「애련송(愛戀頌)」[1939]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영화배우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문예봉은 해방 후 1946년 남조선 영화 동맹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봄 남편 임선규,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월북하였다. 월북 후 줄곧 북한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소인 조선 예술 영화 촬영소 배우로 활동하였다. 1949년 북한 최초의 극영화인 「내 고향」에서 주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수십 편의 주요 영화에 출연하였다. 1952년 영화 「빨치산 처녀」로 공훈 배우 칭호와 함께 국기 훈장 3급을 받았고 1958년 북한 소련 친선 협회 중앙 위원, 1961년 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 중앙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82년 4월 북한 배우의 최고 영예인 인민 배우가 되었고 국기 훈장 1급을 받았다.

2. 「왕의 남자」

도봉구 역사와 관련된 영화로는 연산군과 광대를 소재로 하여 2005년에 개봉한 「왕의 남자」가 있다. 「왕의 남자」는 광대 공길과 장생이 광기 어린 폭군 연산군과 얽히면서 벌이지는 이야기이다. 천한 신분의 광대 공길과 장생이 왕을 웃기기 위해 궁에 들어갔다가 점차 연산군의 광기와 폭정에 휘말리면서 왕의 상처와 광기, 그로 인한 시대의 비극을 목격하게 된다.

역사 속의 비극적인 인물로 기록되는 연산군은 폐위된 후 강화도로 추방되며 중종이 임금으로 새롭게 추대되던 1506년에 병이 들어 31세로 일생을 마쳤다. 7년 후인 1513년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묘소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77번지로 옮기게 되었다. 서울 연산군 묘는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3. 한국 다문화 영상 예술 연합회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280-2번지에 있는 한국 다문화 영상 예술 연합회[Korea Multi-Cultural Visual Arts Association]는 유네스코 산하 조직인 세계 비상업 영화인 연맹[Union Internationale Du Cinema Non Professional. UNICA] 한국 본부에 등록된 법인 단체이다. 다문화 관련 영상물과 사진 전시와 공연을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다양한 나라 사람의 다양한 문화적 풍습을 공유하여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엄선된 작품을 UNICA 서울 세계 단편 영화제와 UNICA 세계 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4. 상영관

현재 도봉구에 위치한 영화관으로는 창5동의 메가박스 창동점이 있으며 도봉 구민 회관에서는 도봉 구민의 문화 수준의 향상을 돕기 위하여 최근 상영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다문화 영상 예술 연합회(http://www.kmvc.org)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13 내용 현행화 현재 도봉구에 위치한 영화관으로는 창5동의 메가박스 창동점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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