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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758
한자 洪雄善
이칭/별칭 진암(晉庵)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8년 2월 3일연표보기 - 홍웅선 생
수학 시기/일시 1937년 - 홍웅선 경성 사범 학교 연습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7년 - 홍웅선 미동 초등학교 교사 재직
수학 시기/일시 1967년 - 홍웅선 워싱턴 대학 교육학 박사
몰년 시기/일시 1997년 1월 17일연표보기 - 홍웅선 졸
성격 교육가
성별
본관 남양
대표 경력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을 지낸 교육자.

[가계]

홍웅선(洪雄善)은 1918년 2월 3일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진암(晉庵),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은행가인 홍헌(洪憲)의 장남으로, 1946년 오기환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홍웅선은 1937년 경성 사범 학교 연습과를 졸업하였다. 사범대를 졸업한 후 교사로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어 미동 초등학교 교사와 경기도 상업 학교 교사를 지냈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에 문교부 편수관으로 임명되면서 공직 생활에 몸담게 되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문교부 학무국장, 사회국장, 행정 이사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문교부 학무국장을 끝으로 문교부를 떠났다.

1963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43세의 나이로 유학에 나서서 미국 테네시 주 피바디(Peabldy)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67년에 미국 워싱턴 주 워싱턴(Washington)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7년 귀국해 연세 대학교 문과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문과 대학장까지 역임하였고, 1980년 정년 퇴임하였다.

1980년에 홍웅선은 한국 교육 개발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1983년까지 활동하였다. 이 기간에는 본인이 1975년부터 작업해 온 ‘한국관 시정 작업’의 일환으로 각국의 교과서를 검토해 한국을 잘못 소개한 사례를 공개하는 한편, 시정 촉구 공한(公翰)과 시정 사항을 각국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1983년 한국 교육 개발원 임기를 마치고 같은 해에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자문 교수, 서울시 교육 발전 위원회 위원장, 한국 교육 개발원 자문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는 한양 대학교 석좌 교수를 지냈다.

홍웅선은 대학 및 교육 관련 기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고, 다수의 교육학 저작들을 집필한 교육자이다. 특히 『한국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 특성』이란 저작을 통해 교육의 인간주의를 선언하며 교과 과정의 개편을 통해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추구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대학 교육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된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홍웅선이 교육계에 미친 영향이 인정되어, 1983년 국민 훈장 모란장이 수여되었다. 1997년 1월 17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신교육 과정의 연구』[연세 대학교 출판부, 1973], 『교육과 정신 건강』[문음사, 1976], 『나의 교육학』[교문사, 1988], 『새 초등 교육 과정』[교학 연구사, 1988], 『한국 교육이 추구하는 인간 특성』[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89], 『광복 후의 신교육 운동』[대한 교과서 주식회사, 1991]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국민 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으며, 1991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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