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94 |
---|---|
한자 | 李登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선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379년 - 이등 출생 |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57년 - 이등 사망 |
현 소재지 | 이등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5(N37° 40′ 40.7537″, E127° 01′ 23.9278″) |
성격 | 묘 |
양식 | 상하 쌍분 |
관련 인물 | 이등(李登)[1379~1457]|의령 옹주(義寧翁主) |
소유자 | 개성 이씨 종중 |
관리자 | 개성 이씨 종중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의 부마 이등의 묘.
[개설]
이등(李登)[1379~1457]은 본관(本貫)이 개성(開城)이고, 아버지는 이개(李開)이다. 태조의 딸인 의령 옹주(義寧翁主)와 혼인하여 태조의 부마 계천위(啓川尉)에 봉해졌다. 이등 묘의 서쪽 능선에는 근래에 건립한 ‘개성 이씨 선조 지단(開城李氏先祖之壇)’이 있다. 이등의 아버지 이개는 본명이 이덕시(李德時)로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개성 이씨 후손들은 이개를 1대조로 하고 개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따라서 이등은 개성 이씨의 2대조이다.
[위치]
이등 묘(李登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5번지에 있다. 무수골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에서 위로 올라가면 1978년 건립한 개성 이씨 선조 사적비(開城李氏先祖事蹟碑)가 있다. 사적비를 지나 5분 정도 올라가면 이등 묘가 위치한다.
[변천]
15세기에 조성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나, 다만 근래에 건립한 몇 가지의 석물이 있다.
[형태]
묘역에는 상·하 두 기의 봉분이 있다. 위가 이등 묘이고, 아래가 의령 옹주 묘로 상하 쌍분 형태이다. 이런 합장 방법은 조선 초에 많이 쓰였다가 후기에는 거의 단분 합장으로 간략화하였다. 이등 묘의 좌향은 남향이며, 의령 옹주 묘는 동쪽으로 약간 틀어져 자리하고 있다.
이등 묘는 묘표·상석·문인석 등의 옛 석물과 근래 건립한 향로석을 갖추고 있다. 봉분에는 장방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는데, 장방형의 커다란 돌을 1단만 쌓아 둘렀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말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조선 초까지 계승되고 있다. 계체석(階砌石)을 2단으로 구분하여 상계·중계·하계로 나누고 상계에는 묘표·석상(石床)을 두고, 중계에는 석인을 두었다. 묘표는 하엽형인데, 봉분 정면에 배치하였다. 뒷면의 음기는 마모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5세기 묘표의 양식을 지니고 있다. 규모는 개석 57×22×36㎝이고, 비신 50×16×83㎝로 소규모이다.
문석인은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입고 홀을 든 형상이다. 고려 시대의 묘 석인처럼 둔중한 사각 석주형 몸체에 얼굴 자체가 매우 커서 추상적이다. 안면은 깊은 선각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였는데, 눈은 큰 타원형으로 눈 꼬리를 살짝 올렸으며 광대뼈와 하악 구조는 돌출되어 과장되게 만들었다. 총 높이는 154㎝이다.
하단의 의령 옹주 묘는 묘표, 석상, 문석인 등의 옛 석물과 근래 건립한 향로석과 새로 만든 원형의 호석이 있다. 묘표는 개석 57×27×37㎝, 비신 55×25×80㎝ 규모이다. 문석인 및 묘표 등의 석물이 이등 묘의 석물과 유사하여 부부 묘의 성격이나 15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금석문]
이등 묘표와 의령 옹주 묘표에 간략한 명문이 남아 있다. 이등 묘표 비신 앞면에는 ‘계천위 시호 안공 이등 지묘(啓川尉諡胡安公李登之墓)’라고 적혀 있고, 의령 옹주 비신 앞면에는 ‘의령 옹주 지묘(義寧翁主之墓)’라고 새겼다.
[현황]
이등 묘의 석물들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다만 의령 옹주 묘의 봉분 호석이나 향로석 등 새로 추가된 석물이 있어 다소 생소하다. 석물들은 마모와 변색이 많이 진행되었다. 개성 이씨 종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등 묘는 15세기 중반 이후 조성된 묘역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매우 연도가 올라가는 묘이다. 특히 부부가 상하로 배치된 형식이나 석물들은 15세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